한국의 추상미술은 6.25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으면서 시작되었다. 1957년에 폭발적으로 많은 그룹들이 탄생하고, 전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인두(1930-1989)는 바로, 서양 근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양식인 추상이라는 시대양식을 자기화하는데 성공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인물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경상남도 창녕 출생으로,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회원이었던 그는 앵포르멜 및 추상표현주의 운동 등 서구에서 시작된 추상 회화의 한국적 표현에 힘썼다.
불교의 선(禪)사상을 색면으로 구성된 추상 회화로 표현하거나, 옵티컬 아트(optical art)를 차용하여 불화인 만다라를 새롭게 변용한 것이 그 예다. 주요 작품으로는 ‘만다라’와 ‘혼불’연작을 꼽을 수 있다.
정읍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은 생애 마지막을 밝힌 ‘혼불-빛의 회오리’ 연작 중 하나다. 그의 만년작 ‘혼불’ 시리즈는 몸과 마음에 존재하던 에너지의 집약체라는 것이 평단의 이야기다.
그 시대를 살았던 대개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갈등과 억압의 시대적 경험에도, 시한부 인생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그는 간절함을 화폭에 담아냈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고요하면서도 자유로운 빛, 밝고 강한 색과 선의 약동이 빛나는 화면을 보여준다. 평생 내면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종교적 희열을 형상화한 작가였음에도 분명 발병 뒤 그의 화면은 달라졌으며, 어쩔 수 없는 죽음을 감지하고서도 그 생명의 빛을 잃지 않았다.
발병 후 그는 지탄을 뜨고 오려내고 그것을 다시 캔버스에 부착하는 방법을 버리고 직접 붓으로 캔버스에 칠하는 방식을 구사하였다.
김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