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 시간 속에 묻히는 흔적들
땅 속에 시간 속에 묻히는 흔적들
  • 박성욱
  • 승인 2019.04.04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것들이 특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만물을 키워주는 흙은 참 다양하다.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색깔, 크기, 감촉 등이 다르다. 하얀 쌀을 선물해 주는 벼를 키워주는 논의 흙이 다르고 보드랍고 탱탱한 두부를 선물해 주는 콩을 키워주는 밭의 흙이 다르다. 자연이 그렇듯이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들로 서로 엮여져 있다. 평범하고 평온하게 있기 때문에 삶 속에서 그냥 흘러간다. 그런데 이 평범한 것이 평범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관심을 가질 때이다. 관심을 가질 때 평범한 것들은 특별한 것이 된다. 수선화를 피워내고 할미꽃을 피워낸 화단의 흙, 빠른 달리기 통통 튀는 공 아이들 발걸음으로 가득한 운동장의 흙, 자리 모양대로 자리했지만 조금씩 불안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사이를 꼼꼼히 메워주는 보드블럭의 흙 등 참 다양한 흙들이 있다. 이 흙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공부를 하면서 평범한 것들이 특별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층 쌓기

과학 시간이었다. 지층과 화석 단원이 나왔다. 수평인 지층, 끊어진 지층, 휘어진 지층 사진이 나온다. 지층 속에 있는 아주 오랜 옛날에 살았던 생물의 몸체와 생물이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는 화석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다. 먼저 매직샌드(손에 묻지 않는 끈기가 있는 모래)에 반짝이는 구슬과 조개 모형을 넣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쑤시개를 조심조심 찾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조심조심 모래를 걷어내고 구슬과 조개 모형을 캐냈다. 화석 발굴하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우와! 보석 캤다!”

“화석도 캤다!”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했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다. 봄 햇살이 따뜻한 데 바람도 별로 없어서 국기 게양대 태극기가 봉에 딱 달라붙어서 아주 조금씩만 움직인다. 아이들과 함께 투명한 컵 두 개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본관 앞 소나무 앞에 모였다. 5명, 6명 씩 두 모둠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색의 흙을 한 주먹씩 모아 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 바로 앞 운동장에 흙은 서로 모아왔다. 사실 자세히 보면 작은 자갈과 모래였다. 한 가지 종류만 모두 모아오니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모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한 친구는 느티나무 아래로 한 친구는 강당 앞 보드블럭 쪽으로 한 친구는 본관 앞 화단으로 한 친구는 이순신 장군상 앞으로 한 친구는 잣나무 아래로……. 한 주먹씩 모아서 펼쳐놓았더니 하얀색, 연한갈색, 진한 갈색, 회색 등 색이 참 다양하다. 조심스럽게 투명 플라스틱 컵에 모아온 흙 중에서 한 가지 흙을 넣었다. 그 위에 물풀을 넣고 꾹꾹 다졌다. 그 위에 또 다른 흙을 넣고 다시 물풀을 넣고 꾹꾹 다졌다. 그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선생님! 여기 다가 나무랑 풀이랑 곤충이랑 넣어도 되요?”

“응 넣어도 되지, 그런데 큰 것 말고 작은 것.”

“개미 넣어도 되요?”

“되지”

“그럼 나는 개미 잡아서 죽여서 넣어야 겠다.”

“야 그건 너무 잔인한데 달팽이집이랑 공벌레 죽은 거랑은 괜찮을 것 같아.”

이제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를 뛰어갔다. 무궁화동산을 두르고 있는 자연석을 들춰보기도 하고 편백나무 아래 큰 돌을 들춰보기도 했다. 공벌레랑 달팽이집을 찾기 위해서다. 달팽이집은 결국 찾지 못했고 죽은 공벌레랑 작은 나뭇가지, 마른 풀들을 가져왔다. 투명한 컵에 다시 흙을 넣고 작은 나뭇가지를 넣고 흙을 넣고 물풀을 넣었다. 다음은 죽은 공벌레, 마른 풀……. 투명 컵 위쪽에 다다를 만큼 쌓았다.

“선생님 이거 언제 다 말라요?”

“좀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다 마를 때 까지.”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아이들이 만든 지층 모양 두 개를 놓았다. 물풀이 다 마를 때 까지 기다려 본다.

 

땅 속에 시간 속에 묻히는 흔적들

화석 발굴하기, 지층 만들기, 화석 만들기를 하면서 문득 ‘흔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들도 동물들도 식물들도 흔적을 남기면서 산다. 눈에 보이는 흔적들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가슴에 남겨지는 흔적들도 있다. 빛나는 보석처럼 떠올릴 때 마다 반짝이며 웃음 짓게 만드는 흔적도 있지만 아픔으로 아로새겨져 떠올릴 때 마다 가슴을 쓰리게 하는 흔적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것들은 그냥 흔적들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다이아몬드 하나가 만들어지기 까지 탄소는 땅 속에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으며 견뎌내고 뭉쳐지는 과정을 겪는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자라가 된다. 행복한 추억은 행복한 추억대로 슬픈 추억은 추억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로새겨진다. 가슴이 타오르고 온몸이 부서질 듯 한 순간이 와도 꾹 참고 당당히 이겨내면 아이들은 보석처럼 자신만의 빛깔을 지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박성욱 구이초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