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쓰는 사회!
계약서 쓰는 사회!
  • 윤진식
  • 승인 2019.04.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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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 작성은 고용과 노동에 대한 노사 간 기본적 약속의 출발점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주 맞닥뜨리는 상황이 계약서 작성일 것이다. 계약서의 사전적 의미는 쌍방의 서로에 대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약속이 성립되었음을 증명하는 문서라고 정의하고 있다. 주로 매매, 임대차, 도급 등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다. 계약관계에서 파생된 계약서는 이제 현대 사회에서 사적자치나 공적인 영역에서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법치의 근간이 되었다. 각종 분쟁이 계약서 유무에 따라서 중대한 판단의 자료가 되고 있으니 얼마나 필요한 영역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고래로부터 현대까지 지속 발전되어온 계약관계는 이제 전형적인 계약관계에서 최근 혼인계약서, 효도계약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계약서를 쓴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서로 믿지 못하는 사이에만 작성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자칫 정으로 맺은 사이가 틀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호기롭게 그런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인간적으로 맺어진 사이임이 강조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효도계약서’나 ‘혼인계약서’라는 것에 대하여 세간의 찬반론이 팽팽하지만 이런 논의 자체가 일고 있는 사회적 변화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의 효도와 사랑이 도덕과 양심, 신뢰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계약은 법률과 권리, 의무 명확화에서 시작하는데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단어의 조합이 우리사회에서 회자하고 관심이 증폭되는 것은 변화된 사회 실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로마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유언장 고치기로 한 해를 열었다고 한다. 그만큼 서구의 오랜 전통은 문서가 없으면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문서화를 중시한다. 전문가를 대동해서 한 조항, 한 조항 따지면서 계약에 임하다 보니 협상능력이 발달해 있다. 웬만한 계약서는 책 한 권 분량에 달하기도 하는데 이에 비해 우리는 상대방을 믿지 못할 사람으로 의심한다고 여길까 봐 문서로 남기는 것을 주저한다. 인적 연계망에 의존한 계약 문화 때문이 분명치 않게 구두로 대충 계약하려 하거나, 계약서를 써도 정확하게 세분화해 기술해 두려고 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작년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비율은 61.6%에 달했고, 작성된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한 경우도 42%나 됐다고 한다. ‘갑’의 우월적 지위에 눌려 ‘을’은 계약서를 쓰자는 말조차 못 꺼내고, 계약서를 안 썼으니 그 횡포에 속수무책 당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런데 사실 청소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실제와 다른 허술한 계약서를 자주 접해 그 실상을 알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4조에서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또한 동법 제17조에서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 근로시간, 휴일, 휴가 등 근로조건 등을 세부적으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위반 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사적 자치의 영역에 공법상의 개입을 통하여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근로계약의 명확화를 담보하고 이의 준수를 위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법은 고용주와 근로자가 자유의사로 근로조건을 합의하여 결정하고, 이를 서면으로 작성하여 준수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계약서 쓰기 운동’을 벌여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계약서를 쓰는 사회와 쓰지 않는 사회 중 과연 어느 쪽이 건강사회, 행복사회로 이르는 길일까. 오늘날의 계약사회에서는 당사자의 누구도 종속적인 위치에 있지 않고 모두가 자유의지에 의한 합의에 의해서 행해진다. 지킬 자신이 없는 계약에는 서명하지 말아야 하며, 일단 서명한 계약은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존중할 줄 아는 것이 계약문화의 본질이자 문명사회를 받쳐주는 뼈대라고 본다. 내가 일을 하는데 시간당 얼마를 받고, 휴일, 휴가 규정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나의 시간을 고용주에게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한 역으로 내가 근로자를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데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근로조건을 설정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어떻게 타인을 고용한단 말인가. 이런 만연한 NO-계약서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윤진식<신세계노무법인 대표노무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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