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다
답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다
  • 정동영
  • 승인 2019.03.28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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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 요직을 두루 거치고 2013년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 김학의씨는 문제의 그 동영상이 폭로되어 취임 1주일 만에 물러났다. 이후 두 차례의 수사에서 그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학의씨는 어떻게 두 번의 수사를 받고도 무혐의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그가 검사였기 때문이다. 검사가 전직 검사를 조사하며 철저한 수사대신 완벽한 제 식구 감싸기를 한 탓이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검찰과 경찰은 무력하다. 스스로에게도 무력하다. 검찰이나 경찰이 ‘자기 식구’를 수사하는 ‘셀프수사’는 이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검사를 수사하는 독립된 수사기구가 있었더라면, 김학의는 이미 5년 전에 감옥에 갔을 것이다. 그 이전에 고위공직자를 전담 수사하는 기구의 ‘청렴의 강제’ 효과로 인해 뇌물도 접대도 망설였을 것이다. 그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김학의들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검사라서 고위공직자라서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오는 일은 막아야 한다. 권력에 독립적이고 정치에서 중립적인 고위공직자수사처, 바로 공수처가 답이다.

 공수처는 이래서 필요하다.

 첫째, 권력형 비리와 부패 방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판사, 검사, 국회의원, 장관, 차관, 대학 총장, 단체장 등 고위 공직자 5,000여 명의 일상생활을 24시간 들여다보는 공수처 존재만으로도 공직사회는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검찰과 경찰 두 사법기관을 견제할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공수처가 존재한다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부패와 무능의 오명도 비로소 벗을 수 있다.

 셋째, 권력에 휘둘리거나 정치에 물들지 않고 중립성과 독립성을 가진 수사기구의 존재가 필요하다. 눈치 보지 않고 외압에 자유롭게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을 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정치검찰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수사를 정치탄압으로 몰아가는 억지도 없을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선거법과 함께 공수처법이 신속처리지정법안 지정을 앞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공수처에 수사권만 줄 것인가 수사권과 기소권 둘 다를 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 때문에 선거법 신속처리 절차가 꼼짝없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기소권 없는 공수처 설치에 나는 동의한다. 그것이 해법이다.

 먼저, 수사권만 있는 권력과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수사기구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청렴 국가’ 싱가포르는 부패행위조사국의 활약으로 가능해졌다. 누아르 영화 부패경찰의 대명사 홍콩경찰도 염정공서로 인해 거듭나게 되었다. 두 기구는 공직자 비위와 부패를 방지하는데 모범적인 벤치마킹 사례이다. 두 기구 다 수사권만 가진 공수처지만 효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제자리 맴돌던 공수처가 또 기소권, 수사권 논란으로 물밑으로 가라앉는 걸 막기 위해 수사권만이라도 가진 공수처 출발이 급하다. 공수처 설치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법개혁의 진전이다. 고위공직자 부패와 비리에 분노하고 겉핥기 수사에 절망하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선물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거제도 개혁이 좌초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정치개혁인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 기소권까지 고집하는 민주당과 수사권만을 고집하는 바른미래당이 신속처리법안 지정의 판을 깨면서까지 양보 없는 싸움을 하여서는 안 된다. 민주당의 양보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이 양보를 개혁의 후퇴로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공수처 설치라는 대원칙에 합의하고, 차이는 극복되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의 천재일우의 기회가 개혁방안의 작은 차이로 무산된다면,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정동영<민주평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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