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주시립극단 이종훈 예술감독의 ‘완장’
[리뷰] 전주시립극단 이종훈 예술감독의 ‘완장’
  • 박정기
  • 승인 2019.03.28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시 덕진예술회관에서 전주시립극단의 이종훈 예술감독, 윤흥길 작, 최기우 각색, 이종훈 연출의 <완장>을 관람했다.

 무대는 배경 쪽에도 관객석을 배치해 극장입구의 객석과 함께 양쪽에서 관극을 하도록 만들었다. 중앙에 저수지를 실제로 만들어 물을 가득 채우고, 주변에 풀과 나무를 실제와 방불하게 보이도록 조경을 했다. 저수지 옆으로 의자와 식탁을 배치해 주점장면으로 사용하고, 저수지 옆 언덕에 원두막 같은 정자를 만들어 주인공의 연애장소로 사용된다. 천정에는 망사를 널찍하게 펴서 매달아 하늘의 구름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연극의 주인공 임종술은 시골에 사는 건달이다. 혼자서 종술을 키워온 어머니 운암댁, 바람난 전처의 딸과 셋이서 살고 있다. 종술은 젊어서 도시에 나가 돈을 벌 생각을 했지만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마을에 돌아왔다.

 종술은 생계를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술 마시고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부리기를 좋아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은 없지만 자존심만은 대단해서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 이런 임종술에게 어느 날 마을 유지 최익삼씨가 접근한다. 최익삼씨의 친척 아저씨는 인근 저수지에서 양어장을 하고 있는데,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친척인 최익삼씨는 사람을 채용해서 저수지 감시원으로 두고 낚시를 단속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적은 돈으로 일 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보니 말 안 듣는 임종술에게 일자리 제의를 한 것이다. 이렇게 임종술은 푼돈에 저수지 감시원으로 일하게 된다. 술집에서도 비웃음 받을 정도고, 적은 월급인 것을 종술 본인도 알지만 종술은 대만족한다. 갑자기 일에 만족하는 자식 때문에 어머니도 놀란다. 종술이 이렇게 변한 것은 바로 팔에 차는 감독 완장 때문이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새긴 ‘감독’의 완장. 종술은 저수지 인근에서 낚시를 단속할 때가 아니어도 항상 완장을 차고 다닌다. 종술은 단순히 완장을 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번질번질하게 칠을 해서 빛나는 완장을 팔에 차고 마을에 나가 거들먹거린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없어한다.

 임종술은 저수지 감시원으로서 낚시를 단속하는 자신의 완장 뒤에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바로 저수지에 관한 ‘공유 수면 관리법’이다. 그는 공유 수면 관리법이 무슨 법인지 잘 외우진 못해도 어쨌든 자신에게 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저수지 주변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려도 용인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래 폭력적인 종술이 완장까지 찼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한다. 자신의 동창이나 친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 양어장 물고기를 잡는 동창을 잡아 혹독하게 팬다. 같이 온 동창의 아들까지 종술에게 맞아 귀청이 상한다. 동창은 결국 자신의 은사에게 찾아가서 돈을 빌려 아들을 치료한다. 하지만 종술은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자신의 저수지는 왕국이나 다름없고, 침입자는 적이기 때문이다. 임종술은 계속해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여행 온 남녀 커플 두 쌍을 잡아서 남자에게 원산폭격을 시킨다. 동네 친구의 텐트를 빼앗고 자신이 마음대로 쓴다. 한술 더 떠서 최익삼씨가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으러 오자, “낚시 금지구역”임을 내세워 최익삼씨까지 물고기를 못 잡게 만든다. 최익삼씨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임종술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인 작부 부월을 데려와 자신의 권위와 영역을 보이고 뽐을 낸다. 그런데 거친 성격과는 반대로 임종술이 작부 부월에 대한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에 가깝다. 산전수전 다 겪은 부월은 완장을 차고 기고만장해 하는 종술에게 처음에는 외면하다가 종당에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마음을 살포시 기울인다. 그런 이면에는 종술 장모의 진정어린 설득이 부월의 심정에 따뜻한 사랑의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연 종술의 스승이 자전거를 타고 찾아와 종술을 냅다 꾸짖으며 완장의 허망함과 무의미함에 대해 일갈을 하고 떠난다. 대단원에서, 천하에 적이 없을 것 같던 종술의 완장권력도 허망하게 끝이 난다. 날이 가물자 저수지의 물을 농업용수로 쓰기로 한 것이다. 저수지 물을 빼고 고기를 치우면서 양어장 관리가 필요 없게 되자 종술의 왕국도 허무하게 무너진다. 그는 홧김에 미친 듯이 난리를 치고 사람을 폭행한다. 경찰이 출동을 하고 결국 마을 사람들의 분노와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을 뒤로하고 결국 종술은 부월과 함께 야반도주를 한다. 저수지 물속에 둥둥 떠 있는 완장에 조명이 집중되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영주가 임종술, 염정숙이 작부 부월, 안세형이 최익삼, 서영화가 종술의 어머니 운암댁, 최 균이 최사장, 정경림이 종술의 장모 태인댁, 고조영, 서유정, 소종호, 이병옥이 종술의 선생, 전춘근, 안대원, 신유철, 정준모, 국영숙, 서주희가 원양, 홍지예, 송한슬이 종술의 딸로 출연한다. 출연자 전원의 작중인물 성격설정에서부터 탁월한 연기력과 방언구사는 극 분위기를 최고수준으로 상승시켜 관객을 독특한 감상의 경지로 이끌어 가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총진행 정경선 단무장, 무대감독 이술원, 기획 정성구, 조연출 홍자연, 조명 김다윤, 의상 진양배, 음악감독 허귀행, 분장 강지영, 사진 김종선, 홍보 이희찬, 무대디자인 인혜란, 무대제작 태극무대, 영상촬영 창작프로덕션, 진행 정경화 이우송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드러나, 전주시립극단의 <완장>을 작품성 연극성 대중성을 완비한 최고수준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글= 박정기(연극평론가·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