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성(茶聖) 초의의 금강산 유람길
다성(茶聖) 초의의 금강산 유람길
  • 이창숙
  • 승인 2019.03.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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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9>

 금강산유람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인듯하다. 빼어난 모습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유람으로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적 소재가 되었다. 우리 선인들은 고려이후에 금강산을 더욱 탐승하였다. 승려와 문인 모두가 금강산유람을 원했다. 중국인들은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직접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라고 할 만큼 금강산 구경을 소망했다. 조선후기에는 많은 화가가 금강산을 화폭에 담았는데, 그림이 고가에 거래됐다. 때문에 지방의 무명 화가들은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을 베껴 주곤 했다. 중국인들도 금강산 그림을 구매하는 등 국외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영국 작가이자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은 평생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연구하였는데, 자국에서 한국 관련 책을 출간하여 금강산의 승경(勝景)을 예찬하였다.

 조선 후기 풍족한 경제력이 바탕이 된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은 최신문화를 수용하는 등 새로운 문풍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신분을 뛰어넘어 교유했으며, 산수 유람을 즐기며 이를 통해 특별한 체험을 하였다. 이들에게 금강산유람은 하나의 큰 관심거리였다.

 일찍이 이들과 교유했던 다성 초의(茶聖 草衣, 1786~1866)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동생 산천 김명희(1788~1857)와 금강산유람을 계획했으나 산천이 병이나서 무산된다. 여러 해가 지난 뒤 1838년 봄, 우여곡절 끝에 금강산 유람길에 오른다. 초의의 금강산 길은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철원을 지나 회양을 거쳐 내금강산으로 들어가 명승지를 유람한 후 한양으로 돌아왔다. 유람에 함께 했던 제자 수홍과 같이 「유금강산시」에서 금강산의 장엄함을 이렇게 읊었다.

 

  첩첩히 산이요 굽이굽이 물길이라

  첩첩한 산, 굽이 흐르는 물, 활처럼 휜 하늘을 가릴 듯

  안개이슬 구름으로 옷 만들고

  서리 맞은 꽃잎으로 식량을 대신하리라

 

 금강산의 물과 산이 하늘과 조화를 이뤄 선경(仙境)을 이루고, 안개 이슬로 옷을 만들고 꽃잎으로 식량을 대신함은 금강산은 신선이 사는 신선산이요. 초의는 이미 신선이 됨을 의미하는 구절인 듯하다.

 이렇듯 비경을 유람하던 초의에게 추사는 편지를 보낸다. 초의의 금강산 유람은 여러번 계획 끝에 실현된 것이기에 “금강산에 간 그대는 오래된 빚을 통쾌히 갚았다”며 초의의 금강산행을 즐거워하며 “그대가 간 곳은 이 몸이 간 곳이고, 그대가 가지 않은 곳은 내가 가지 않은 곳이다”며 자신이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금강산 유람 후 만나길 원했던 모양이다.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으로 나를 찾고자 한다면 나를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매우 덥거나 춥다 하더라도 나를 보지 않고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것으로 보아 한양에 오게 되면 꼭 만나기를 바란다는 구절인 듯하다. “여기에 온 어린 동자는 쌀 두 말을 감당할 수 없으니 그사이에 인부를 보내서 식량을 운송토록 하라”는 당부 글로 보아 초의의 금강산유람은 추사의 후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추사와 초의는 신분을 뛰어넘어 참으로 든든한 벗이었다. 이 편지는 금강산으로 떠나는 초의에게 보내는 편지로 『완당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전략)...다만 금강산으로 떠나기 전에 나를(추사 김정희)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네. 나에게 보낸 차품은 심폐가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만큼 좋지만 매번 차를 덖는 방법이 조금은 지나쳐서 차의 정기가 사그라진 듯하네. 만약 다시 만든다면 불의 온도를 주의하심이 어떻겠는가.” 1838년(무술년) 4월 8일.

 

  당시 추사는 1837년 부친 김노경의 사망으로 금강산으로 떠나는 초의를 만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금강산유람 떠나는 초의에게 차품에 대한 당부를 하는 것으로 보아 추사의 차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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