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과학보다 정의가 앞서는 나라
사실과 과학보다 정의가 앞서는 나라
  • 김창곤
  • 승인 2019.03.21 18: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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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와 저주의 굿판이다. 지방의회까지 나서 반일 민족주의를 부추긴다. 경기도의회가 전체 초·중·고교 비품 가운데 이른바 ‘일본 전범(戰犯)기업’ 제품에 딱지를 붙이는 조례를 만들려 한다. 건설-교통 등 대부분 낯선 284개 업체 명단도 붙였다. 바른 걸 익히며, 손가락질 아닌 희망과 포용의 열린 마음을 배워야 할 아이들이다. 연필 한 자루에도 세계 사람들 피땀이 배어 있다. 일본 제품이 몇이나 될지 모르나 마찬가지다. 전범 명단엔 독일 벤츠나 BMW도 오를 수 있다. 일본엔 국민 750만명이 지난해 다녀왔다.

 전북교육청은 다른 여러 교육청과 함께 “일제 잔재가 남은 교가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작곡·작사가의 교가 25곡을 구분해냈다. 필자가 나온 고교 교가도 ‘친일시인’이 가사를 붙였지만, 일제 찬양은 없었다. 지금도 정답고 뭉클하다. 전북도의회에서도 친일 작곡가·시인이 만든 ‘도민의 노래’를 폐기하고 친일시인 시비를 철거하라는 주장이 나온다. 도는 ‘도민의 노래’ 사용 중단을 밝혔다.

 ‘친일 잔재 청산’은 3.1절과 광복절이면 으레 나오는 주장이었다. 올해는 3.1절 100주년이었다. 대통령 기념사부터 ‘빨갱이’와 ‘친일’을 대립시켜 갈등을 불렀다. 대통령은 “‘빨갱이’는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정치 경쟁 세력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며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규정했다.

 기념사에서 3.1 만세 희생자 수도 논란을 빚었다. 대통령은 시위에 202만명이 참여, 7,500명이 살해됐다고 했다. 지난 2월 국사편찬위원회 발표(참가자 최대 103만명, 사망자 최대 934명)와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한민국 정통 역사연구기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연설은 독립운동가 박은식이 상해 임정에서 1920년 펴낸 ‘독립운동지혈사’ 통계를 인용했다. 국사편찬위는 “3년 동안 임정 사료집과 일제의 보고, 판결문, 신문조서, 선교사 자료 등 8,915건을 취합하고 역사자료 정보화 경험과 기술을 집약해 사명감을 갖고 만든 고도의 연구 결과물”이라고 밝혔었다.

 연설문 작성자는 희생자 수만큼 반일 감정이 커지리라 계산했을 수 있다. 정의를 내세워 국민 정서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분노 극대화는 권력 유지에 유리할 수 있다. 그는 “법보다 여론이 힘센 게 민주주의라고 ‘촛불혁명’이 입증했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노동 계급의 분노가 자본주의·사유재산을 궤멸시킬 것으로 예고했다. 자본은 끝없이 집중되며, 그럴수록 빈곤층 규모와 착취가 커진다. 그리고 마침내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선다. 예측은 정의와 도덕이 내린 계시였으나 그는 과학이라고 우겼다. 그는 산업자본주의가 진행되고 자본 집중이 고도화될수록 노동 착취가 강화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그는 1860년대 ‘자본론’을 저술하면서 ①20~60년 전 산업혁명 초기 자료들을 인용했다. ② 노동 조건이 열악한 산업에 집중했고 ③착취가 자본주의 근본 속성인 것으로 호도했다. 산업혁명 진척으로 개선된 환경의 공장들과 인권·복지 데이터는 외면했다. 그는 도서관 문헌과 보고서, 신문기사에서 사실을 구한 ‘책상물림’이었다. <자본론>은 당대 영국 총리의 연설까지 왜곡한 부정직한 저술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근대 어떤 지식인보다도 인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비극이었다. ‘분노의 과학’을 레닌과 스탈린 모택동이 추종하고 실현하면서 1억명이 제물로 희생됐다. 마르크스가 “쇠사슬밖에 잃을 게 없다. 만국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쳐 만든 제국은 허물어졌다. 이 땅에선 그러나 계급투쟁 이론이 반일 민족주의와 짝을 이뤄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에 불을 붙인다.

 일제가 물러간 뒤 74년이 흘렀다. ‘친일파’는 세상을 떠났다. 인류 문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땅에선 아무리 도를 넘어도 ‘반일’이면 무죄다. 일제 수탈과 근대화, 강제징용과 위안부, ‘민족 실력 양성’과 친일-반민족행위의 경계까지 치밀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로 역사를 정립할 때도 됐다. 정의와 도덕은 사실과 과학을 동반해야 생명을 지킨다. 일제 강점의 치욕사가 정치에서 해방돼야 한다.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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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 2019-03-23 18:23:14
대한민국 사회에서
반일이라는 항목이 사라질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다
왜냐하면 반성을 모르는 친일매국과 과거사 반성을 하지않는
일본전범의 망령들이 버젓이 살아 있으므로
이런 글은 그것들이 모두 과거의 일이 될때나 쓰셨으면 합니다
2019-03-22 07:11:33
일제가 수탈 목적으로 통계작성을 시작했는데 틀리게 할까? 상식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알 것. 사망자 뻥튀기 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