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검정고무신
추억의 검정고무신
  • 박종완
  • 승인 2019.03.19 1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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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과 더불어 우리들의 삶은 엄청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저변의 급격한 물가상승과 빈부의 양극화는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한국물가정보가 발간한 지난 1970년부터 2015년까지의 주요 품목별 ‘종합물가총람’은 물가변동의 45년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총람에 따르면 버스요금은 10원에서 1,300원으로 130배, 라면은 20원에서 850원으로 42배가 올랐으며, 쌀(중품 40kg)은 4만2,225원에서 12만5,000원으로 2.9배 상승했다고 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일컫던 시절 시골에서 재산목록 1위는 대부분 전답(田畓)이었는데 주로 전답을 사고팔 때 기준은 벼(쌀)이었다. 논마지기를 사고파는 대가로 쌀 몇 가마니로 할 것인지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거래가 성사되는데,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서로 밑진 거래라는 서로 아쉬움을 막걸리 한 사발 같이하며 상대를 위로 했었다.

 그런데 요즘 무슨 운동화 한 켤레 가격이 자그마치 쌀(40kg기준) 10~15가마니를 줘야 한다니 그 상술과 가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가난했던 시절 없어서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우고 자랐지만 우리네 부모들은 제 자식에게도 성실과 근검절약을 최우선가치로 훈육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요즘 세대의 부모들은 자식을 적게 낳고 귀하게 키우는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자식들에게 더불어 사는 방법과 인성교육보다 무조건 경쟁에서 상대를 이기는 법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기 자식에게 만큼은 남들보다 더 좋은 것 더 비싼 최고의 것만 먹이고 입히려 경쟁하고,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몇십 만원 하는 휴대폰이 필수품이 되어야 하고, 겨울철 유행하는 등골 브레이커 패딩이 양극화의 표상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열가마니 넘는 쌀값을 지불하고라도 남들보다 비싼 운동화 한 켤레를 소유하려는 물질 만능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필자가 어렸을 적 아침등교 시마다 없어진 검정고무신을 찾기 위해 허둥댈 때면, 어머니는 누렁이가 물어가 어딘가에 감춰둔 신발을 귀신같이 찾아 주셨고,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이면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시는 가마솥에 고무신을 따듯하게 데워주셨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참으로 행복한 지난날의 추억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 초등학교 교실복도의 신발장에는 바둑이 한두 마리가 있었다. 대개는 신발장에 검정고무신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간혹 부잣집 애들이 신고 온 하얀 운동화가 듬성듬성 놓여있는 모양새가 꼭 바둑이를 연상시키곤 하였다.

 신발장에도 출석번호가 매겨져 있었는데 가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고무신 때문에 소란이 일곤 하였지만, 모든 것이 귀한 때라 각자 본인만 알 수 있는 표식을 해 두었기 때문에 자기 신발만큼은 귀신같이 찾아냈었다.

 오전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면 이미 비워진 도시락을 뒤로하고 쏜살같이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다 함께 축구를 즐겼는데, 맘먹고 걷어찬 헛발질에 공보다 오히려 고무신이 멀리 날아갈 때면 여기저기서 깔깔대며 쓰러지던 친구들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검정고무신은 사계절 내내 신발 본연의 기능 외에도 제 주인을 위해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더운 여름철 하굣길의 개울가는 어린 학생들의 동심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는데 너나 할 거 없이 뚝 방에 책보를 내팽개치고 개울가로 내려가 가재며 미꾸라지 사냥을 할 때면 고무신은 포획한 물고기들의 가두리로 안성맞춤이었고, 장난감이 없던 시절 시냇가 모래밭 놀이터에서도 고무신은 여러 형태로 변신하는 귀한 장난감이었다. 동무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아차 하는 순간 고무신이 냇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 가버리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집에도 못 가고 울음보를 터뜨리던 어린아이들 모습도 선하다.

 어느덧 필자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지만, 그 옛날 아름다웠던 추억의 검정고무신 을 아직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핵가족시대 금지옥엽 귀한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안겨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억의 검정고무신처럼 소박한 행복과 변치 않는 근검절약의 교육이 우선되었으면 싶다.

 박종완<계성 이지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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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 2019-03-26 14:32:30
그려, 그 시절이 그리울 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