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포용국가’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혁신적 포용국가’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최낙관
  • 승인 2019.03.1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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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국가비전은 ‘포용국가’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수단은 ‘혁신성장’이다. 이른바 문재인 정부의 ‘혁신적 포용국가’는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새로운 실험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보고에서 2022년까지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튼튼한 사회안전망과 질 높은 사회서비스 제공, 사람에 대한 투자, 질 좋은 일자리 확대, 충분한 휴식 보장이라는 사회경제적 비전을 담은 ‘포용국가 추진계획’을 발표했고 3·1절 기념사에서도 ‘혁신적 포용국가’를 재천명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그리는 복지국가의 틀은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의 ‘혁신적 포용국가’에 대한 구체적 정책구상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안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먼저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들여다보자.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의 지표’로 여겨지는 일인당 국민 총소득 3만 달러에 도달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느끼고 즐기는 행복한 국민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체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주위를 돌아보게 되지만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내린 결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기며 1인당 GNI 2만 달러를 달성한 지 12년 만의 일이자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들 중에서 7번째 기록으로 발표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온도와는 괴리가 크다. 저출산 및 고령화,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구조적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소득불평등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과연 누가 축배를 들어야 하는 주인공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국민들의 한숨과 박탈감은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정부 정책구상의 핵심은 소득, 환경·안전, 건강, 주거·지역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국민들이 행복한 일상생활을 누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분야에서 소외되거나 피해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문대통령은 “혁신성장이 없으면 포용국가도 어렵지만, 포용이 없으면 혁신성장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포용국가에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껏 교육받고, 가족과 함께 충분히 휴식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개인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며 “혁신으로 함께 성장하고, 포용을 통해 성장의 혜택을 모두 함께 누리는 나라”를 천명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의 정책구상이 얼마나 잘 작동될 수 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청년들의 기본생활을 위한 일자리 정책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엄청난 정책자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올해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거의 80%가 정규직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책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자 정부정책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원천이다.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포용적 성장’이 정부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짙은 비정규직 일자리 확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규제완화, 증세거부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인한 소득불평등이 성장동력을 떨어뜨려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는 대통령의 비판적 문제의식과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지 모호해지고 있다. 가슴으로는 ‘분배적 포용국가’를 그리고 머리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상호 배타적 가치와 이념의 충돌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책혼선으로 인한 정부실패가 가시화되지 않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다시 한 번 기원해 본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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