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3월
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3월
  • 이소애
  • 승인 2019.03.12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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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을 기해서 시간의 흔적들이 보인다. 한복을 입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소리를 방송에서 듣노라면 마치 내가 그 시대의 조선 사람이 된 것 같다. 차디찬 가슴에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하고, 도마 위 생선을 손질하다가 손가락을 베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독립선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일도 기해년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라고 소리 내어 읽는 동안 신흥무관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젊은이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린다. 그 시대의 문인들의 행적이 궁금하기도 했다.

  1920년 서울 배화여고 재학 중 3·1운동 재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만 20세도 안 돼 투옥된 어린 여학생들의 사진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왼쪽 가슴에 이름을 붙이고 당당히 사진 촬영을 한 14세 최연소 여학생을 보자 마치

 땅에 떨어진, 아직 빨간 피가 살아서 숨 쉬는 동백꽃을 보는 듯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광주에 사는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서 달려갔었다. 전쟁을 치른 도시인양 거리의 건물 벽에서 본 탄피자국들과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광주학살을 눈으로 보기 위해서 도청으로 가서 즐비한 시체와 태극기로 덮은 주검을 붙들고 울부짖는 통곡을 뒤로하고 왔었다. 대한민국 광주에서 말이다. 버스도 가지 않고 전화가 불통이라서 달려갔었다. 급한 건 종합소득세 신고 때문이었다.

  11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의 법정에 섰지만, 혐의사실 일체를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시인 윤동주의 <서시>와 서정주 시인(1915~2000)의 매일신보에 1944년 11월 29일에 실린 <마쓰이 오장 송가> 시가 겹쳐서 환청처럼 들렸다. 눈앞에 아른거렸다.

 서시-윤동주(1917.12.30.~1945.2.16.)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민족저항시는 독립선언서가 방송에 울려 퍼지는 3월이어서 더욱 심금을 울린다. 오직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원고지를 메운 시인이 존경스럽다.

 돼지는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는 동물이다. 부끄러움을 참회하기는커녕 뻔뻔스러운 예술인들을 보노라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신체적 구조에 순응하며 사는 돼지가 오히려 부럽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하늘을 우러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렵기까지 한다.

 돼지는 땅에서 나는 감자나 고구마를 찾아다니느라 땅만 보고 먹이를 찾다 보니 신체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고개를 15도 이상을 들 수가 없다니 돼지는 영영 높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지 못한다는 안쓰러운 동물이다.

 아니다, 돼지는 돌부리나 웅덩이이나 비탈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때 하늘을 볼 수 있다. 돼지는 스러질 때나 넘어질 때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자의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 때는 바로 자기의 실수로 넘어졌을 때에 죽을 때까지 볼 수 없는 하늘의 빛을, 태양의 광채를 본다.

 부끄러움이 없는 한편의 시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가를 반성해 보는 3월이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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