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과 장자연
서지현과 장자연
  • 조배숙
  • 승인 2019.03.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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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유일한 범죄였다.

 왜 당했느냐고 손가락질 하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2차 가해가 관행처럼 따라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지현 검사는 한국판 미투 혁명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공고한 남성카르텔로 치부되던 검찰조직의 민낯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 숨죽이며 고통받던 피해 여성들의 용기도 잇따랐다.

 피해자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죄에 합당한 처벌을 하라는 서지현 검사의 당연한 일갈은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전해졌다.

 장미의 이름으로 존엄을 외치다. 지난 3월 8일은 111주년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장미를 나누는 축하와 자축 행사가 어우러졌다. 북한에서조차 여성 노동자들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이 언론을 탔다.

 여성의 날은 그 자체로 여성들이 쌓아온 투쟁의 역사다.

 그래서 여성의 날 상징은 빵과 장미다.

 빵은 동일한 노동 가치에 대한 동일한 임금, 즉 여성들의 생존에 대한 요구라면 장미는 여성으로서의 존엄, 인권의 의미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임금격차와 폭력, 광범위한 불평등을 지적하며 차별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35주년 한국여성대회는 올해의 여성 운동가로 서지현 검사와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선생을 선정했다.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올해의 한국여성대회는 아예 주제 자체가 미투였다. 미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의를 담았고 양성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서지현 검사 역시 미투가 번져가는 세상이 아니라 미투가 사라지는 희망을 수상소감으로 대신했다.

 진실은 침묵하지 않는다. 서지현 검사가 그렇게 다시 여성운동가로 세상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또 한 명의 여성, 배우 장자연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고작 27세였다. 배우의 꿈을 채 펼치기도 전에 절명했다.

 어느덧 10년이다. 어머니의 기일에도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에 끌려다녀야 했다는 그녀, 여전히 장자연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사로도 못 밝히는 것이 아니라 수사라는 법적 절차를 이용해 사건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덮고 은폐한 세력이 있다는 의미다.

 일명 장자연 리스트라 불리는 문건이 고인의 유서가 아니라 자신을 착취한 자들과 싸우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라는 것도 밝혀진 마당이다.

 고인의 후배인 윤지오씨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얼굴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배우로 살고자 한 장자연씨의 꿈을 짓밟고 착취하고 끝내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누구였는지, 장자연씨의 평안한 안식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진실이 밝혀져야 할 시간이다.

 최근 왜 여성의 날은 있는데 남성의 날은 없습니까? 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무슨 남녀차별이 있느냐?

 여성들 목소리가 높아져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는 덤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의 날은 있고 남성의 날은 없을까?

 노동절은 있는데 사용자의 날이 없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기념일을 정해놓았다는 것은 여전히 상대적 약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20대 국회만 하더라도 여성의원의 비율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100대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1%대에 머물러 있다.

 굳이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여성들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들이 존재한다.

 세계 여성의 날의 역사가 1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빵과 장미, 최소한의 생존, 최소한의 존엄과 싸우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다가도 장자연이란 이름 앞에선 여전히 먹먹하니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장자연을 덮고 양성평등을,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서 최소한의 생존, 최소한의 존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연대와 응원을 보낸다.

 조배숙<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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