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본질을 탐구해온 추상화의 대가 윤명로, ‘Crack 77-624’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온 추상화의 대가 윤명로, ‘Crack 77-624’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3.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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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요일의 그림산책]<4>
윤명로 作 ‘Crack 77-624’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윤명로(83)는 1960년에 한국미술의 주요사건 중의 하나인 한국미술가협회를 결성, 한국근대미술사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원로화가다. 이 결성이 하나의 주요 사건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바로, 그가 1959년 국전에서 특선을 받았으나, 이듬해 반(反) 국전 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있다.

윤명로 작가가 1960년 대부터 선보인 ‘벽’, ‘문신’ 등의 연작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부상하고 있었던 미술운동인 앵포르멜(Informel)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두꺼운 물감층의 마티에르가 드러나는데, 이러한 특징은 그의 작업에서 오랜기간 나타난다.

 아마도 이는 그의 삶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읍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때 함경북도 길주로 이사를 갔다가, 해방이 되어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전주에 정착해 살게됐던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6.25가 터지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두터운 물감층의 균열을 활용한 크렉(Crack) 기법을 시도함으로써 비정형의 화면에 독특한 조형성과 입체감을 부여한다. 노동집약적으로 반복하는 붓질의 행위를 통해 움직임의 흔적을 캔버스에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또 그는 아크릴 물감과 수묵을 함께 사용하여 매체간의 조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세잔과 겸재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는 작가의 이야기는 동서양을 아울러 자연을 붓에 그려운 그의 인생을 짐작하게 만든다.

 정읍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인 ‘균열’연작에서 작가는 건조하는 과정에서 갈라지는 우연적인 결과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화학적 현상을 인간 사회의 규범이 붕괴되는 상징적 이미지로 파악함으로써, 의도적으로 화면에 배치해 단순한 현상을 넘어 고도로 정제된 회화적인 표정을 지닌 추상작품을 제시한다.

 언젠가 그는 한 인터뷰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화폭에 담아 그리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 앞을 서성이면서 마음으로 듣고 보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상상해 본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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