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에 붙은 뒷버너의 저주
북미협상에 붙은 뒷버너의 저주
  • 채수찬
  • 승인 2019.03.10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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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은 일찍부터 북미 양자가 협상하여 북핵과 안전보장을 맞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었다. 그러려면 양자에 다 협상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원해왔다. 그러나 역대 미국정부에서 북핵문제는 뒷버너(back burner)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뒷버너에 놓인 냄비에는 요리사의 관심이 덜 간다. 앞버너로 옮겨야 냄비가 끓는다.

 최근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제일 먼저 필자의 뇌리를 스친 생각은 「뒷버너의 저주」였다.미국의 정치 상황 때문에 북핵문제는 다시 뒷버너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노이에서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어떤 합의가 나와도 합의가 없는 상태보다는 나을 것이란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양자가 동의해야 합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문제해결에 진척을 이룰 기회를 또 놓쳤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럼 왜 회담이 깨졌나.

 협상에 보다 적극적인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정권은 생존을 위해 협상하고 있다. 체제유지를 궁극적으로 보장받는 게 목적일 뿐만이니라,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에서 체제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키고, 단계마다 경제적 이익도 얻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유지하면서 협상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다. 일괄타결은 북한의 목표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담진행 자체가 북한이 원하는 바의 한 축일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핵문제만 있는 게 아니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거나 핵확산 위험이 없는 한 북한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능하면 단기적 타결을 통해 장기적 확실성을 확보하려 한다. 장기적 불확실성 속에서 단계마다 이익을 취하려는 북한과는 협상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협상이 제대로 되려면 상대방의 이런 속성을 서로 이해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잦은 미국에는 인내를 가지고 북한과 밀고 당기기를 지속할 정치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빌클린턴 대통령은 제네바 합의틀을 이끌어 냈으나 막판에 정치적으로 힘이 빠지면서 국교정상화 등을 매듭짓지 못했다. 조지 부시 주니어 대통령은 처음부터 대북정책에서 한발 빼고 있었다. 제2차 북핵위기 때 농축우라늄을 이유로 제네바 합의틀을 깨기보다는 합의를 그대로 이행하면서 농축우라늄을 값을 더 매겨 사주는 것이 현명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안에 포진해 있던 네오콘들은 제네바 합의틀을 준수할 생각이 없었고, 이라크가 평정되면 북한을 공격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대북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에 나름 판돈을 걸었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여기에 집중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과의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것을 안 이상 협상타결을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여 공을 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열린 기회를 놓쳤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다. “우리가 양보를 안한 게 아닌데…. 싱가포르 회담은 잘 되었었는데….” 하며 미국을 원망할 것이다.

 북한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더 큰 손해를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한 게 아니라 큰 이득을 노렸다. 북한이 미국에 더 양보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하면 손해를 계속 보게 될 것이다. 또 위기를 고조시켜 상황을 타개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겠지만, 위기 고조는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서 협상장에 나오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미 시작된 협상에서 큰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는 잘 맞지 않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로 한국, 미국, 북한 모두 딜레마에 빠졌다. 새로운 동력 마련이 쉽지 않아 한반도 긴장과 북한경제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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