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 전주의 ‘유관순들’
잊혀진 이름, 전주의 ‘유관순들’
  • 김석기
  • 승인 2019.02.28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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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요한나(17살), 김순실(17살), 김나현(17살), 김공순(18살), 최애경(18살), 송순이(18살), 최기물(20살), 최금수(21살), 함연춘(21살), 김신희(21살), 강정순(21살), 임영신(21살). 꽃다운 나이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날 고종황제의 명복을 비는 뜻으로 상복으로 갈아 입고 머리에는 흰 띠를 질끈 동여맨 채 남문의 인경소리를 신호로 두려움 없이 거리로 뛰쳐나가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던 ‘전주 3?13만세운동’의 주역들이다.  

‘전주 3?13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남문 장날에 일어난 전북 최대 규모의 독립만세운동이다.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 및 천도교도 등은 채소가마니로 위장해 실어 나른 태극기를 들고, 남문 인경소리에 맞춰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남문에서 대화정을 지나 대정 우편국 앞까지 기운차게 달렸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넘쳐났다. 우편국 앞에서는 총검을 휘두르는 일본경찰과 밀고 밀리는 승강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일본경찰은 평화의 대열을 향해 총을 쏘기도 하였다. 당시 매일신보에 ‘만여명의 군중 또는 군중이 수천명’ 등의 기록으로 보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염원하며 만세를 불렀는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날 시위로 무려 300여명이 검속되었다.  

그 중 여학생도 10여명이 넘었다. 3?1운동 역사상 이렇게 많은 여학생이 한꺼번에 잡혀간 예도 드물었다. 당시 일제의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는 “1919년 3월 13일 오후 1시경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남문 밖 시장부근 부터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하여 보안법 제7조에 해당한다.”며, 12명의 기전여학생에 대해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하였다. 그러나 대한인의 긍지와 자긍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법정투쟁에 나섰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전주의 여학생 김공순, 최요한나, 최애경 등이 독립운동을 하다 갇혔는데, 여학생들은 필사의 결심으로 음식을 단식한 지 4일이 되었다. 일 검사가 위압적으로 심문하였으나 여학생들은 화평한 기상과 담대한 언사로 대답하되, “우리가 어찌 너희들의 판결에 복종하랴? 너희들이 우리 강토를 강탈하고 우리 부모를 학살한 강도이거늘 도리어 삼천리 주인이 되려는 우리를 비법이라 하니 이는 불법한 판결이라.” 하였더니, 일 검사가 대노하여 칼을 빼어 한 여학생의 왼쪽 귀를 배어 위협하고, 여학생들의 옷을 다 벗겨 나체로 세워 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조롱하였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섬 오랑캐의 만습을 감히 예의인에게 행하느냐?”고 호령하였다. 또 일 검사가 “누가 너희들을 시켜 이런 일을 하였느냐?”고 말하자, “전국의 의(義)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 만세를 일제히 호창한 것이거늘, 시켰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너희는 진실로 세계정세에 암매(暗昧)한 섬사람이로다.”라고 일갈하였다.  

이들은 전주의 ‘유관순들’이다. 두려움 속에서도 일제에 끝까지 불복하는 결연한 기개와 용기가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많다. 실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약 2,000여명. 하지만 독립유공자로 포상이 이루어진 분은 296명. 전체 포상자 1만 4,830명의 2%에 불과하다. 이번 100주년 3?1절을 기해 포상된 75명을 합쳐도 400여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족의 평화를 찾는데 남녀가 따로 있지 않았다. 이제는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의 흔적을 찾고 알려야 할 때다. 잊혀진 이름, 전주의 ‘유관순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기억할 차례다.

  김석기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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