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나이
일할 나이
  • 김차동
  • 승인 2019.02.24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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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 중에 흔치 않은 질문을 받았다. 새해 소망을 묻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식상하다 못해 질릴지도 모를 ‘새해 소망’이 ‘흔치 않은 질문’이 되어버린 것이 언제쯤부터이던가? 손가락으로 꼽아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서른 중반 그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소망’이란 더 이상 꿈이라도 꾸어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그저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K씨’가 될 것을, 그 즈음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끄덕이고 있었다. 꿈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소년이 노인이 된다는 것.

 몇 해 전부터 내가 꼽는 소망은 한 가지였다. ‘모닝쇼 30주년을 무사히 맞이하는 것’.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 한 해 한 해를 성실하고 무탈하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숙제다. 30주년을 언급하면 열에 일곱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래 소망으로 꼽을 만한 목표지’ 공감을 하다가 어느새 <김차동의 FM모닝쇼>가 그만한 연륜을 쌓았고 김차동 역시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내가 젊은이였던 시절, 지금 내 나이의 어른들에게 나는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반성한다.

 최근 대법원이 30년 만에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최후연령(노동가동연한)을 기존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했다. 어떤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정이었는데, 보다 폭넓게 보면 사회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결 소식을 접하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일하는 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성공적이지 않은 인생을 산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야 할 시기에도 고생하는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노인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의 분야가 대부분 단순한 육체노동에 기댄 저임금 업종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평생 전문직으로 일했다고 하더라도 노년의 그가 제2의 일을 찾기로 마음먹는 순간 그의 경력은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다. 퇴직 전에 제2의 인생을 탐색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이다. 퇴직 연령 이후에도 소득 보장을 위한 경제 활동은 지속해야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7년 5월 발표한 ‘노인 부양부담의 증가 및 정책적 시사점’이란 자료를 보면 이런 현실은 더욱 뚜렷하게 수치로 드러난다. 2015년 기준, 한국은 소득보장분야에서 82위로 OECD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용근로자는 6.1%에 불과하며, 임시근로자, 무급가족종사자, 일용근로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하는 노인의 문제를 노인 일자리의 문제로 치환하면 사회적 시각은 또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앞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온라인상의 반응들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장년 세대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며 청년층을 죽이는 판결이라는 댓글쯤은 양반이었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노인층과 청년층이 자리 뺏기 싸움을 하는 듯한 형국이다. 국가인권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노인에 부정적인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된다’는 답변이 80.9%, 노인 일자리 증가 때문에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는 답변이 56.6%였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주된 원인은 일자리와 복지비용을 둘러싼 갈등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 어르신들 세대에는 ‘자식이 연금’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노인층으로 유입되는 세대들은 자신과 자식의 삶은 독립적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자신들이 한창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던 시절에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부모’의 역할을 다하느라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하지 못한 채로 의식만 독립적인 노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무려 45.1%로 OECD 국가 중 1위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마주하게 된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7년 14.2%를 차지한 데 이어 2030년이면 2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민 4명 중 한 사람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령화 사회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뒷짐 지고 물러서서 볼 문제가 아니라는 심각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을 지켜보며 답답하면서도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4차 산업 혁명을 맞아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가까운 미래에 현재 직업의 9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전해진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눈앞의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싸고 세대 간의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가까운 미래보다 당장 일자리가 발등의 불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혼란스러워진다. 이렇듯 노인의 삶을 고민하는 나는 노인인가. ‘꿈이 있는 한 청춘’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하는 나는 청춘인가.

 김차동<전주MBC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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