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신위의 다벽(茶癖)
자하 신위의 다벽(茶癖)
  • 이창숙
  • 승인 2019.02.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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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7>

  신위(申緯, 1769~1846)는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의 한 사람으로 조선후기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시흥의 자하(紫霞)산방에서 독서를 즐겨 호를 자하로 칭하였다.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자하산방에서 은거하기도 한다. 많은 시(詩)를 남겼는데, 이 중 다시(茶詩)에 관한 것이 수십 수가 넘는다. 그가 남긴 많은 다시만큼 풍류와 차를 즐겼던 차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글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보여 ‘하늘이 내린 천재’라 했다. 성격이 호탕하고 예도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았다. 당대의 재사(才士)와 벗하며 묵죽(黑竹)을 그리고 시 짓기를 즐겼다. 그의 거침없는 논평은 위정자의 비위에 거슬려 벼슬길에 오른 지 10년 동안이나 외직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원만한 성품으로 경계가 없어 당색과 종교를 초월하고 국경을 넘어 폭넓은 교유를 했다. 그때 교유의 매개체는 차와 시였다. 신위의 예술세계는 많은 이들과의 교유를 통해 이루어졌다. 차와 관련된 시는 추사, 초의, 다산 이외에도 여러 인물이 있다. 교유했던 대표적 인물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17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신뢰와 경외를 아끼지 않고 정신적 교감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추사와 차를 나누며 화답한 글 여러 편이 전해진다.

  다음은 1821년에 지은 시로 “한림학사 김정희 시를 차운하여 받치다”이다.
 
 “이렇게 사귄 기쁨 갈수록 깊어지는데, 세월은 어김없이 흐르네.
 갈대 차갑고 예서는 오래되어 정신과 마음을 합하고,
 차를 끓이며 시도 이루어 기운과 운치를 겸했네.
 우산에 비 떨어지는 소리 같이 들으며 한림원 길 걷고,
 서향각에서 홀로 슬픈 30년 마음이네.
 한림학사와 승지는 모습이 소탈하니 관각의 아름다운 이야기 써서 보탠다네.”

  자하와 추사가 차로서 교유하는 모습을 시에서 볼 수 있다. 추사는 한림원 근무 중 여가시간에 차를 끓이고 시를 지어 신위에게 보내면 자하는 그것을 평해서 답하곤 하였다.

  또한 자하는 승정원에 들어간 뒤 완연한 노인의 모습으로 활기 넘치는 젊은이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은 한림학사인 추사가 보낸 차를 마시고 그를 만나는 일이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추사는 늘 이름난 차를 새로 끓이면 어린 종을 통하여 차를 보내곤 하였다. 이렇듯 이들의 다정함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기(知己)로서 다른 이의 부러움을 샀다. 늙은 아전들도 대낮 직무 보는 여가에 시문을 헤아리니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내용도 보인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다.

  차를 가까이하니 차를 다루는 수준도 일가견이 있었다. “귀양살이의 기쁨”이라는 시에서 물을 평하는 내용이 있다.

  “깊은 샘에서 진리를 긷노라니 글맛이 통하여, 정수리에 제호를 부은 듯 불심을 깨닫네.
  샘물이 달콤하니 죽은 물은 아니고, 바닷가라 하더라도 빗물은 짜지 않네.
  천하의 차 끓이는 물을 평 하건데, 강왕곡 물이 제일이라면 이 물은 두세 번째 되리.”

  이시는 1833년, 평신진의 관아에 재직할 때 관아 뒤편의 유천에서 물을 길어 차를 끓여 마시며 읊은 시이다.

  자하는 「남다시병서」에서 “내 삶은 담박하나 다벽이 있어, 차를 마시니 정신이 환해지네”라 하였다. 한잔의 차를 통해 벗과의 교유는 물론 흐려진 심신을 맑게 했다.

  자하에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도 소소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타인과의 교류는 인생에 윤활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에게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인간이지만, 많은 관계 속에서 교류가 반드시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교유의 매개체로 차가 있어 선인들은 풍류를 즐기며 인생의 참맛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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