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은 인촌(仁村) 유산 지켜낼 것인가
고창은 인촌(仁村) 유산 지켜낼 것인가
  • 김창곤
  • 승인 2019.02.20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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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보문역~고대앞 사거리 1.2㎞는 ‘인촌로’였다.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1891~1955)의 호(號)를 붙인 이 도로가 최근 ‘고려대로’로 바뀌었다. 이 도로를 따라 주소를 둔 주민 9,000여명의 과반이 동의했다. 성북구청장이 직권으로 도로 개명을 추진하면서 구청 지적과 직원들이 직접 가구를 돌며 서명을 받았다. “친일 행위자의 호를 지워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주장이었다. 도로 이름을 바꾼 노고로 지적과 직원들은 포상 휴가를, 구청장은 ‘친일 청산’을 주장해온 단체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고 한다.

 ‘친일파’를 색출해 낙인찍는 일은 이른바 재야사학자, 평론가들이 ‘대한민국 정통성’에 시비를 걸며 부단히 벌여왔다. 이념으로 과거사를 재단해온 이들은 1990년대 단체를 조직, 친일 잔재를 씻자는 목청을 높이며 ‘친일인명사전’도 만들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80년대 운동권과 함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했다. 그 시절 특별법으로 만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 인사’ 1,006명을 보고했다. 건국 직후 1949년 ‘반민특위’가 검찰에 송치한 친일 혐의자 559명보다 많았다.

 친일 인사 다수는 당대 여러 분야에서 최고 실력자로 체제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노고도 많았고 책임도 무거웠다.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조사는 불가능했다. 해방둥이가 환갑을 넘어선 가운데 당사자와 증인이 세상을 뜨고 자료도 흩어졌다. ‘마녀 사냥’이라는 비판 속에서 인촌에게도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그는 오늘의 삼성과 같은 조선 첫 대공장 기업 ‘경성방직’을 동생 김연수와 함께 일궜다. 언론, 교육도 일으킨 민족진영 핵심 인물이었다. 일제 말 총독부 기관지 등에 징병·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글 등을 그의 이름으로 실은 게 친일 행위였다. 인촌의 친일은 법원 판결로 재작년 확정됐고, 정부는 1962년 그에게 추서한 건국공로훈장을 작년 2월 취소했다.

 도로에서 그의 호를 지우는 일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이념 궤도를 더 뚜렷이 했다. “촛불혁명으로 적폐를 청산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며 갈등과 증오를 부추겼다. 정권의 ‘반일(反日) 민족주의’와 ‘현대사 죽이기’는 실수나 몰이해 탓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원하는 데로 끌고 가기 위해 계획된 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위안부 합의 파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군당국 간 초계기 ‘레이더 갈등’이 꼬리를 물며 한일 관계 골이 깊어졌다. 역사를 둘러싼 대립을 넘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인촌로는 고려대 앞뿐 아니라 인촌이 태어난 고창에도 있다. 고창군 부안~심원면 12.5㎞다. 이 도로 개명 및 고창읍내 인촌 동상 이전-철거를 놓고 벌인 여론조사에서 지금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고창군은 그러나 공론화나 협의체 구성을 통해 도로 개명 등 여부를 결정키로 하고 곧 그 방식을 확정하겠다고 밝힌다.

 인촌은 일제로부터 작위나 권력, 은사(恩賜)를 받지 않았다. 민족을 도탄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독립투사가 인촌의 사업들을 수행할 수 없듯, 그는 독립투사가 될 수 없었다. 독립을 희망할 수 없던 시절, 민족 실력 양성은 누군가 해내야 했다. 순일(順日)·친일은 이 땅의 리더들에게 숙명이고 원죄였다. 우리 말조차 지키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인촌은 건국 후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건국훈장을 청하지 않았고, 그를 기리는 도로 이름을 바라지 않았다. 대한민국 성공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작은 과오는 커 보일 수 있다. 그의 시대를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에게 죄를 묻고 있다. 사람이든 나랏일이든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탓하며 관용하고 개방하고 교통하고 덧셈을 해야 미래가 있다.

 ‘인촌로’가 지워지면서 고려대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다져온 자존감에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인촌은 고창이 배출한 민족 지도자였다. 인촌 생가와 일대기는 출향민에게까지 자랑스러운 유산이었다. 고창이 이념과 정의가 뿜는 독선에 밀려 뺄셈을 할 것인가.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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