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에 실려 오는 신의 선물, 사랑
봄 햇살에 실려 오는 신의 선물, 사랑
  • 정영신
  • 승인 2019.02.18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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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볕이 반갑다. 우리 삶의 어둠 같은 긴 겨울을 무사히 지나온 까닭일 것이다. 남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화사하다. 그 햇살의 온기를 머금고 뜰의 매화가 볼을 붉힌다. 루우 루우 맑은 햇살 속으로 봄새가 날아간다.

 봄은 탄생의 계절이다. 조물주는 세상 모든 만물을 의미 없이 창조하지 않았다. 봄이 되면 우주 안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천지간의 양기를 먹고 새롭게 태어난다. 탄생에는 나름대로 내밀한 통과의례가 있다. 작은 미물일지라도 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암수가 서로 다정하게 주고받아야 할 성스러운 의식이 있다. 어느 생명체도 욕심스럽게 암컷 혼자서, 수컷 혼자서 탄생의 문을 열지 못한다. 이 우주는 아름다운 암수 조화의 별밭이다.

 자애로운 신은 새로 탄생한 이 생명체를 위해 선물까지 준비했으니, 그것은 바로 빛이다. 빛은 밝음이요, 따사로움이며, 사랑이다. 생명체의 탄생을 위한 그 신기한 빛은 곧 봄 햇살이다. 봄 햇살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을 해동시키고, 먼 산의 잔설을 녹인다. 대지는 언 몸을 풀고, 깊은 계곡물은 돌돌돌 내를 따라 흘러간다. 순종에 익숙한 생명체들은 황송스러운 마음으로 그 물에 목을 축이고 또다시 번식을 위한 살이를 반복한다. 봄 햇살은 신의 축복이다.

 또한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봄은 양기가 상승하는 계절로 대자연과 인류가 모두 봄에 번식하고 생육한다. 우리 인간도 봄이 되면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남녀 간의 정욕이나 청춘의 정욕을 춘정(春情) 또는 춘심(春心)이라고 한다. ‘회남자(淮南子)’에도 “봄에는 여자가 슬퍼지고, 가을에는 남자가 슬퍼진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것은 잉태를 담당하는 여자의 본능으로 봄이 되면 남자가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여자의 봄바람은 그 정욕을 채우기 위한 동물적 수태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봄은 오행에서 목(木)에 해당한다. 오색 중에서는 청(靑)이고 방향은 동쪽에 속한다. 봄은 문학에서 사랑을 이루기 위한 출발과 만남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오색 꽃으로 산과 들을 화려하게 물들인 봄은 남녀의 만남을 부추기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계절이다. 김유정의 ‘봄 봄’에서도 어수룩한 주인공 ‘나’는 “밭 가생이를 돌 적마다 야릇한 꽃 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위에서 벌들은 붕붕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에서 알 수 있듯이 봄 햇살을 받자 사랑을 하고 싶은 춘정이 발동한다. 그래서 장차 장인이 될 점순이 아버지에게 성혼을 시켜달라고 떼를 쓴다. 또한 ‘동백꽃’에서는 마름집 딸 점순이가 ‘노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알싸한 향내가 진동하자 사내보다 더한 춘정을 느낀다. 그러더니 아직 성에 눈뜨지 못한 ‘나’를 끈질기게 들볶으며 야릇하게 유혹을 한다.

 이 ‘동백꽃’은 ‘생강나무’를 이르는 것이다.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산동백나무’라고 부르고, 강원도 지역에서는 ’동박나무‘라고도 한다. ‘정선아리랑’에도 등장하는데 열매는 양반집 마님들의 고급 머릿기름으로 사용되었다. 앙상한 회갈색 가지에서 3월이 되면 잎보다 먼저 노랗고 둥근 꽃망울을 터뜨린다. 노란 꽃잎에서 내뿜는 진한 생강 내가 멀리까지 퍼지는데 이 향이 청춘남녀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이처럼 소설 속에서도 형상화되고 있듯이 꽃향기가 산과 들에 넘치는 봄날은 환상적인 사랑의 계절이다.

 북송(北宋)의 문인 소식(蘇軾)은 ‘춘야(春夜)’라는 시에서 “봄밤은 천금에 값한다.”고 노래했다. 온갖 꽃이 피어나고 벌과 나비가 꽃술을 탐하는 봄날은 얼마나 감성적인 계절인가. 하물며 그 봄밤의 매력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소식은 봄밤을 천금에 비교할 만큼 아름다운 밤이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봄을 성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입춘에 받아 둔 물은 버리지 않았다. 그 물을 소중히 지켰다가 부부가 동침할 때 마셨다. 그러면 반드시 아들을 낳게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 하늘을 나는 새와 대지를 달리는 짐승들도 암수 서로 사랑을 나누는 순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 세상 모든 만물은 어쩌면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나고, 사랑을 위해 살다가 한 세상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든 삶도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오히려 축복일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 가망이 없던 병들도 간혹 사랑의 힘으로 치유되는 예를 볼 수 있다.

사랑은 청춘 남녀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된 용모양의 묵은 가지에서 서너 송이 핀 매화는 고매(古梅)라고 해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 꽃이 바로 회춘(回春)의 상징이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수록 고목에서 꽃이 피듯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장수하며 살 수 있다. 진시황이 그처럼 애타게 찾던 불로초는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랑이다. 온갖 영화를 누렸던 당 현종도 사랑하는 양귀비를 잃게 되자 모든 의욕을 상실하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는 반드시 때가 있다. 서로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자. 사랑은 한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사랑이 아직 내 곁에 있을 때 온몸과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랑하자. 매화향기 아름다운 이 봄날에 그 사랑을 내가 더 사랑하자.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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