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를 위한 변명의 조건
손석희를 위한 변명의 조건
  • 장상록
  • 승인 2019.02.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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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인으로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많은 희생을 강요당한다. 사생활 침해가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개인에겐 커다란 행복의 조건이다. 익명성이 주는 자유는 생각보다 크다. 술을 먹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실수와 부끄러운 기억으로부터 잊혀 질 권리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는 미테랑 대통령이 젊은 여인과 식당에서 나오는 사진을 보도했다. 대통령과 다정한 모습을 보인 사진 속 주인공은 미테랑의 숨겨진 딸 마자린이었다. 대통령이 혼외정사로 낳은 딸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미테랑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이 혐오했던 대상은 아버지와 딸의 소중한 순간을 파괴해버린 파파라치였기 때문이다.

 공인의 사생활일지라도 그것이 공적 영역과 무관한 경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프랑스인의 인식이었다. 또한 그것은 마자린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한 공동체의 당연한 책무였다. 시간이 흘렀지만 국가기관이 나서 현직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공론화하고 결국 옷을 벗게 만든 과정이 불편했던 것도 그 과정에서 침해되는 아이의 인권 때문이었다. 어찌 마자린의 인권만 소중하겠는가. 

  다중인격과는 별개로 사람은 하나의 관계 속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공적 관계 속에서의 나와 구분해 인격과 가치관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이른바 공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도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직장까지 수많은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스크린에 투영된 가공된 형태일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는 인물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그 부분에 한정된 것이다.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의 사생활은 그들의 문학이나 음악과는 별개다. 더불어 사람에겐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영역도 자리하고 있다. 영화 [라쇼몽]속 독백을 되뇌는 이유다.

  그럼에도 오로지 하나의 모습만을 가진 인격체가 존재한다면 그는 신독(愼獨)을 온전히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유념할 것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신독을 실천하는 당사자 외에는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유추는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손석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파워엘리트다. 최근 논란이 된 문제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관심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은 분명 그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의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 말고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과 주장은 다르다.”

  나는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문제에 관심이 없다. 손석희의 사생활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손석희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 접촉사고를 내고 그 처리과정에서 합리적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또한 그의 옆자리에 누가 탔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가 당연히 누려야할 사적영역에 그 누가 현미경을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손석희가 답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신에게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과 주장이 다르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왜 그 오랜 시간 협박과 공갈을 감수하며 비굴하게 처신했는가에 대한 대중의 질문이다.

  손석희는 대한민국의 힘 있는 대상들을 상대로 성역 없이 질문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인물이다. 그가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다. 대중은 그에게 방송이라는 공기(公器)와 함께 그것을 활용해 정권은 물론 이 땅의 힘 있는 대상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신뢰와 권한을 부여했다.

  손석희가 공갈범으로부터 피해를 봤다면 우리는 그를 보호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손석희의 정직함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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