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마녀로 산 그녀들을 생각한다
불길 속 마녀로 산 그녀들을 생각한다
  • 이소애
  • 승인 2019.02.13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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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사진은 무릉도원으로 날아가는 나비처럼 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인권운동가인 김 할머니의 영정에 고개 숙여 애통한 마음을 보냈다.

 장례식장에 달려가서 노랑나비에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왔어야 하는데 변명에 불과하다. 청년 나비들이 있어 든든해 보였지만 함께하지 못한 처신이 부끄러웠다. 노랑나비 만장을 들고 김 할머니가 눈물이 없고 억울한 일이 없는 세상에서 편안하게 사시기를 기원했다. 집에서.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는 일본군 성노예로 살아온 삶을 어느 누가 보상해 줄까. 영정의 국화꽃 송이송이에서 불길 속 마녀로 산 할머니의 억울한 청춘이 잠들고 있었다. 전쟁 이후에 겪은 상처의 후유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성으로서의 행복권을 말살시켰을 것이다.

 또 도지사 지위를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한 전 충남도지사가 징역 3년 6개월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이 되었다는 소식은 봄 소식처럼 다가왔다. 1심 무죄를 뒤집고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인용하여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있는 피의자에 대한 선고는 이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에게 성폭행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보다 법정에 드나들며 속속들이 수치스런 과거를 고백했을 때의 부끄러움과, 주위에서의 질타는 불길 속 마녀로 살아왔음에 틀림없다. 방청석에서 유죄 선고가 나오자 법정에선 박수가 터져 나온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였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심석희 선수를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다는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 씨는 성폭행 혐의 일체를 부인한다는 뻔뻔스런 태도에 자식들을 세상에 내놓기가 무섭다. 심 선수 또한 나 혼자만 간직했던 수치스런 비밀을 폭로하고 비난의 눈길을 피해 불길 속 마녀로 살아왔을 그녀에게 위로한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보다 이 사실을 폭로한 후의 정신적 피해가 더 컸을 것이다.

 ‘비동의 간음죄’란 협박 폭행 없어도 상대 의사에 반할 경우를 말한다.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 여부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기대해본다. 강간죄가 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를 요구하는 현행법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기대해 보는 이유는 내 자녀들이 성폭력이라는 위태로운 직장이나 사회에서 밝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갓갓갓, 성폭력’

 이 말은 최근 인터넷에서 ‘대세’ 신조어이자 감탄사이다. 이미 ‘갓’GOD은 2000년대 후반 인터넷에서 어떤 인물의 뛰어난 활약을 칭송할 때 통용돼 온 감탄사다. 주로 접두어나 접미어로 사용되는 식이었다. ‘갓’을 최근에는 세 개를 연이어 붙여 쓰는 이들이 늘었다 하여 나도 한겨레 신문에서 신조어 공부를 하는 터에 이렇게 감탄사를 만들어 본다.

 ‘갓갓갓, 성폭력’

 한국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도록 사회가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억울하고 분해서 흘리는 눈물은 98%의 물과 2%의 염분, 단백질 등으로 구성된 무색투명한 액체이다. 그러나 불길 속 마녀로 살아온 그녀들의 눈물은 100% 피눈물일 것이다. 가슴 속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간헐천처럼 세상 밖으로 치솟아 오르는 한의 분출임이 틀림없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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