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안타까운 한국 응급의료의 현주소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안타까운 한국 응급의료의 현주소
  • 김형준
  • 승인 2019.02.10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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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대로 모든 진료과를 순회 근무하는 대학병원 인턴시절 스케줄표가 나오면 항상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추석이나 설 연휴에 응급실 근무가 배정되는 지 여부였다. 명절 연휴 응급실 근무는 바로 헬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명절 연휴는 휴일이 길고 대부분 의원들이 휴무를 하기 때문에 대학병원 응급실은 연휴기간동안은 전쟁통속 야전병원을 방불케 한다. 필자의 인턴시절에는 심지어는 넘치는 환자 때문에 침상이 없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진료를 한 적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는 지켜야 하는 자리이고 꼭 해내야 하는 일이기에 많은 의료진이 지난 설 연휴에도 묵묵히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연휴기간 근무를 하던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인은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추정된다는 전언이다. 故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대부이자 버팀목으로 불리던 진정한 의사였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5년 1기 전공의로 당시 모두가 기피하던 응급의학과에 뛰어든 故윤한덕 센터장은 20여 년 동안 낮에는 환자 진료를, 밤에는 한국의 응급의료체계를 바로 잡고자 제도개선과 예산 확보를 위해 뛰어다니던, 말 그대로 우리나라 응급의료 발전에 산증인이다. 응급의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모든 것에 고인의 손때가 묻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았던 유인술 교수(충남의대 응급의학과)는 “네디스(NEDIS·국가응급진료정보망) 라든지 외상센터라든지 닥터 헬기라든지 다 그의 업적이다. 또한 이런 것들보다 윤 센터장의 가장 큰 업적은 이런 일이 전부 가능하게 만든 예산확보에 있었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윤 센터장은 국회를 쫓아다니면서 왜 이런 예산이 필요한지, 이런 것들을 다 설득하고 응급 의료에 필요한 모든 사업을 할 수 있는 그 기반을 마련한 것. 그것이 그의 제일 큰 역할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 전체 500개가 넘는 응급 의료기관하고 또 재난이 생기고 그러면 구급대가 출동하고 할 때 의료진도 같이 보내야 하는 이런 사업을 총괄하고, 그래서 낮에는 회의나 국회나 이런 데 쫓아다니면서 또 설득하고 그러고 나머지 해야 할 여러 가지 서류 작업 이런 것들은 밤에 해야 하지 않았겠냐?”면서 “그러다 보니까 집에 갈 틈도 없어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한 달에 서너번 집에 가며 근무하는 생활이 10년 넘게 계속 반복된 것”이라고 덧붙였고 그것이 사망원인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응급의학과는 의대생들에게 기피 전공이다. 대부분의 수련 병원응급의학과 전공은 해마다 지원자가 없어 미달한다고 한다. 이유는 고생스럽고 힘든 것에 비해 전문의가 된 후 미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형 상급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일반 병원에서 응급실 운영은 많은 인적, 물적 투자에도 너무 낮은 수가와 보상 때문에 운영할수록 적자만 나는 구조이다 보니 의무적으로 응급실을 운영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포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응급실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다수의 환아 사망사건이 있었으며 그 열악한 환경이 알려진 신생아중환자실이나 성인 중환자실, 중증 외상센터 등은 병원 내에서 대표적인 적자 파트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의 중증외상센터 의사로 유명한 이국종교수의 말처럼 환자를 보면 볼수록 병원에 손해를 입히는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오명을 받는 곳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응급실, 중환자실 들은 바로 환자의 생명과 즉결된 곳임에도 의사들조차 전공과 근무를 기피함으로써 대부분 병원들이 운영을 포기하거나 의료의 질이 낮아져 그 피해가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응급실, 중환자실과 같은 환자들의 생명을 다루는 부서는 시장의 논리를 벗어나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 우수한 의료 인력이 투입되고 최선의 환경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수가제도 등의 개선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고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한 나라의 응급의료 최고 수장도 가중한 업무에 과로사로 죽음을 맞이할 만큼 열악한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가 하루빨리 개선되어 고인의 바람처럼 응급 환자가 언제 어디서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다시금 ‘참 의사’ 故윤한덕 센터장의 명복을 기원하며….

 김형준<의료법인 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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