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벗하며, 매월당 김시습
차와 벗하며, 매월당 김시습
  • 이창숙
  • 승인 2019.02.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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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6>
『매월당집』. 김시습이 별세한지 18년뒤 중종의 명에 의해 유고수집이 시작되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초기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 불의했던 시대에 온몸으로 저항한 유교적 지식인이자, 승려였으며 세상을 등진 방외인이었다. 법명은 설잠(雪岑), 호는 청한자(淸寒子), 매월당(梅月堂) 등이 있다. 서울 명륜동 반궁리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을 깨우치자, 외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말보다는 『천자문』을 가르친다. 그러자 3세에 시를 짓고, 5세에 『중용』과 『대학』을 익히니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 불렀다.

  소문을 들은 세종은 이 사실을 승정원에 알아보라 했다. 이에 박이창(~1451)은 어린 김시습불러 “동자의 학문은 백학이 푸른 하늘가에서 춤추는 것 같구나”라고 하자, 김시습은 “성군의 덕은 황룡이 푸른 바다에서 나는 듯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은 “내가 친히 보고 싶지만 사람들이 듣고서 놀랄까 염려된다. 그 집에 권하여 재지를 감추어 가르치고 기르게 하라. 그 학문이 성취되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쓰겠다.”고 일렀다. 이때부터 ‘오세 동자’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일화가 있다. 김시습은 세종과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서 유학을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13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강릉 외가에서 자라게 되지만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은 어린 그에게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그 후 절에 기거하면서 유학보다는 불경 공부에 심취하였다. 과거시험 준비를 위해 유학에 전념하지만, 낙방 등 벼슬길은 그에게 멀기만 했다. 그의 나이 21세에 수양대군의 단종 폐위 소식을 듣게 되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밤낮으로 통곡을 했다. 3일 후 책을 불사르고, 뒷간에 빠지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며 그길로 떠나 승려가 된다. 벼슬길에 나가길 원했으나, 그의 재지(才智)는 정치에 쓰이지 못하고 속세를 떠나 방외인(方外人) 적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반승반속(半僧半俗)으로, 머리는 깍았지만 수염은 기르는 등 교리는 따랐으나 계(戒)는 그대로 지키지 않았다. 시를 짓고 통곡하거나 사대부를 욕하는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신망이 없는 이가 벼슬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통곡하며 ‘백성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사람이 직무를 맡았는가’라고 탄식하였다.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곧은 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청빈한 삶을 산 은둔자였다. 훗날 『국조인물고』에는 “김시습은 지혜와 용기가 비범하고 재기가 출중하며, 강직한 성품을 지녀 남의 잘못을 용납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렇듯 유자이며 승려이며 방외인이었던 그가 지은 시에는 차와 관련된 시가 25편이 넘는다. 다른 선인(先人)들에 비해 차와 관련된 시(詩)가 많다. 그의 삶 속에 차는 청빈한 삶의 벗이었다. 다음은 “煮茶(자차)”라는 시이다. 잠 못 이루는 밤 샘물을 길어 차를 달이며 자신의 속절없는 젊은 날을 회상하는 시이다.
 
  “솔바람이 솔솔 차 끓이는 연기를 몰아서, 하늘하늘 비껴 시냇가에 떨어지네.
  동창에 달 돋아 잠 이루지 못해, 병을 들고 가서 찬 샘물을 긷네.
  날 때부터 속진(속세의 티끌)을 싫어함이 스스로도 괴이하여, 문에 들어 봉(鳳) 자를 쓰다가 벌써 청춘 다 갔네.
  차 달이는 누런 잎을 그대는 아는가, 시를 쓰다가 은둔의 삶 들킬까 두렵네.”

  구절에 ‘봉(鳳) 자를 쓰다’는 평범할 ‘범(凡)’과 새‘조(鳥)’가 합쳐진 것으로 ‘뛰어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평범한 인간’이라는 뜻으로 젊은 날 자신의 호기(浩氣)를 빗댄 듯 하다. 이렇듯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시를 매개로 세상과 인연을 맺게 될까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다. 젊은 날의 기상도 괴이함으로 날려 보내고 차와 함께 나누는 평온함을 읊은 시인이다.

  다음은 산중의 사계절을 읊은 것으로 “술에 취해 사가(四佳)의 운을 따라 시를 지어 스님에게 주다”라는 시이다. 『매월당시집』 권3 수록되어있다.

  “산중에는 기록할 달력도 없지만, 경치를 보면 짐작할 수 있네.
  날 따뜻해지면 들꽃이 피어나고, 바람 훈훈해지면 처마 그늘 더디 가네.
  동산에서 서리 맞은 밤 수확한 뒤, 화로에 눈(雪) 녹인 물로 차 끓일 때라.
  두어라, 깊이 생각할 것도 없으니, 내 평생 이렇게 살아왔노라.”

  매월당의 세상사는 맛이 오롯이 드러나 있는 시이다. 속세의 세상살이 기준에는 관심 없는 듯, 절기를 잊은 그에게 차는 계절을 알려주는 길잡인 듯하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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