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逍毒)에 대하여(2)
소독(逍毒)에 대하여(2)
  • 최정호
  • 승인 2019.02.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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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독(逍毒)은 사전적으로 “병의 감염이나 전염을 막기 위하여 병원균을 죽이는 것을”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는 ‘독’을 청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19세기가 저물어 갈 때까지도 장기(miasma)이론과 세균이론(germ theory)이 경쟁하고 있었다. 장기는 나쁜 공기를 뜻한다. 즉 질병인 나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추론이 당시의 의학 수준에서는 타당한 추측이었던 것이다.

 소독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셉 리스터는 19세기 말 석탄산으로 손을 씻고, 수술기구를 씻고, 수술도중 분무기로 수술부위에도 이 소독약, 석탄산을 뿌려가며 수술을 했다. 소독법은 사실상 근대 외과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간단한 수술에도 70-50% 가까운 사망률을 보이던 당시, 리스터의 소독법으로 사망률은 25% 이하로 낮아졌다. 그런데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25%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사망률이 아닌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알려진 제중원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1885년에 문을 열었는데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일족인 민영익이 심한 자상을 당했는데 내로라 하는 어의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던 차에 서양의사 앨런이 단순 봉합을 하여 치료를 해준 공로로 허가해 주었다 한다. 조선 제일의 명의들이 단체로 체면이 구겼으니 웃지 못할 사건이다. 문명은 물과 같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으나 조선 말기 쇄국정책으로 그 물길을 막아버렸으니 어찌 어의들만의 수치이겠는가? 1876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학술지 <란셋>에 살균법에 대한 리스터의 논문이 발표된 후 9년이 지난 시점이니 이 시기, 의·과학적 발견은 통신수단과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빠른 전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19세기까지 임상의료 분야에서 수술적 치료는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17세기 전에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은 비슷한 한계를 넘지 못하고 신학과 주술, 철학의 경계에서 희망과 믿음이 경험과 관찰과 함께 혼합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방혈 요법(blood-letting, 피뽑기)으로 사망하였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던 워싱턴이 후두염으로 고열이 나자 대통령 주치의들은 수차례의 방형법으로 대통령을 허열성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했다고 볼 수 있다. 4체액설을 2000년 이상 인체의 생리를 지배하는 법칙으로 신봉하던 서양의학은 피뽑고, 설사시키는 것을 만병통치약 쯤으로 처방해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음양오행을 인체와 우주의 기본원리로 여기는 철학적 의학의 전통이 건재하다. 사실 히포크라테스의 전인적 의료 개념은 전통 한의학의 개념과 비슷하다. 19세기 이후 서양의학은 전통적인 히포크라테스 의학을 버리고 병의 원인 치료에 주력한 <크니도스>학파가 득세를 했지만, 현대의학은 다시 한의학과 히포크라테스의 전인적 치료의 필요성을 호명하고 있다. 의학이 퇴조했다는 것이 아니라 병의 치료가 아니라 병을 앓고 있는 인간을 치료해야 한다는 개념이 분석적, 과학적 현대의학에게 좀 더 종합적이고 인본주의적 의학을 요구하는 것이다.

 소독법은 멸균법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는데 차이점은 인체에까지 뿌려 대던 석탄산 분무를 중지하고 인체가 아닌 수술기구, 공기, 수술 장갑 등을 무균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열린 상처에 세균을 죽이는 소독제를 뿌리면 인체의 건강한 세포도 함께 손상된다는 것을 알아챈 의사들의 연구에 따른 것이다. 세균을 사멸시킬 소독제가 인체의 세포에게는 유해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수술기구나 수술환경에 유해한 세균에 대한 무균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백혈병이나 에이즈 등 면역 결핍 환자에게 무균실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개념에서 출발한다. 더구나 인체에는 우리 몸의 세포의 숫자보다 더 많은 미생물과 공생한다는 것이 알려진 지금 인체는 멸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은 자명하다.

 진료 현장에서 살펴보니 의사든 환자든 소독이란 단어의 의미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듯하다. 즉 소독제로 쓰이는 알코올이나 포타딘, 항생제 연고가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없애 준다는 믿음을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듯하다. 세균이나 우리의 인체의 세포는 구분없이 살아있는 유기체로 그 구조나 생리현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단순한 소독제가 타겟 세균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망을 당위로 해석하는 인간의 오래된 사고의 습성일 뿐이다. 우리는 세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내 몸에는 수십 조개의 세균이 어디에서나 산재하며 우리의 몸과 함께 공존한다. 따라서 환부를 살펴보고 치료하는 것은 <소독>하여 세균이라는 적을 섬멸할 목적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환부의 상태를 관찰하여 질환의 경과를 확인하고 예후를 예측하고자 함이다. 4명의 프랑스 왕을 연달아 모신 왕궁의 궁정의였던 앙브루아즈 파레는 “나는 상처를 감아줄 뿐, 신이 치료한다”고 했다. <신>의 시대에 살던 겸손한 의사, 파레의 표현을 지금의 용어로 바꾼다면 “의사는 다만 치료에 도움을 줄 뿐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정도가 되지 않을까?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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