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근촌 백관수의 옥중 시집 ‘동유록’을 읽고
[리뷰] 근촌 백관수의 옥중 시집 ‘동유록’을 읽고
  • 김승곤
  • 승인 2019.01.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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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촌(芹村) 백관수(白寬洙)(1889~1950)가 동경의 감옥에 유폐되어 쓰신 한시를 그의 아들이 한글과 영어로 번역한 시집이 최근 기미독립운동의 횃불이 된 2.8독립선언서 100주년 기념으로 나왔다. 그  ‘동유록(東幽錄)’(시산맥)을 시종일관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

 1889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학과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경성전수학교 (현 서울대학)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에 유학중 1919년 2월 8일 조선청년독립단의 대표로, 춘원 이광수가 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경의 감옥에 투옥되어 1년 간의 옥고를 겪으면서 쓴 한시(漢詩) 70 여 편이 수록된 시집을 근촌의 차남, 백순 박사가 한글과 영어로 번역해 귀중한 ‘동유록’을 세상에 내 놓게 되었다. 한시 번역은 중국의 고사를 잘 알아야 가능하고 특히 근촌의 동유록은 일본인이 쓰는 한자에 밝아야 할 수 있다고 20년 전 최승범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근촌은 출옥 후 일제 강점기 긴 세월 애국자로서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살았으며 식민지시절 동아일보 마지막 사장으로 강제 폐간을 당했던 언론인이자 시인이었다. 해방 후 그는 한민당의 창당에 주역을 맡았으며, 고창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한국 최초의 헌법을 기초하였으나 6.25 동란 중 북한으로 강제 납북되어 비운의 일생을 마감했다.

 마침내 금년 2월 8일, 2.8 독립선언서 100 주년을 맞이하여 동경 YMCA에서 열리는 기념 세미나에서 백순 박사는 이 시집에 관한 문학 에세이를 발표하게 된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를 인용하면,

 正當

 正當二月時 春色尙何遲
 三疊幽窓下 也吾獨不知

 정녕 때는

 정녕 때는 2월이건만
 봄 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세 다다미 크기의 감방 창 아래에서
 역시 나 홀로 모름이련가

 Surely Now

 Surely now it is February, though;
 Why does the springtime come late still?
 Imprisoned in this three tatami-size prison cell with a window,
 I might be only the one not to realize it.

 이 시는 2.8 독립 선언이 도화선이 되어 3.1 독립만세 운동이 고국에서 거국적으로 전개되어 갈 것이라는 예감이라도 한 듯 봄을 애타게 기다린다.

 

 근촌의 동유록은 불타는 애국심에서 나온 눈물 어린 저항시로서, 일시적으로 일제의 굴욕적 지배에 놓여 있지만 반드시 이 굴레를 벗어 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투지가 뚜렷이 엿보이게 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험난한 가시밭 길을 헤쳐 나간 한 지식인의 삶의 모습에서 그의 투철한 애국 정신과 감성은 물론 그의 인간적 면모까지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집이 되었다.

 근촌의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와 우국지사의 모습을 100년 후 나온 동유록을 통해 후학으로서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근촌은 인촌 김성수 선생(중앙학교/고려대학교 교주, 동아일보 창업, 부통령 역임)과 더불어 한국 근세사 전라북도의 큰 인물일 뿐 아니라 조선의 큰 거목이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못 마땅히 여기는 젊은이들은 이 시집을 읽고 근촌과 같은 선현들의 애국심이 얼마나 뜨거웠는 지 느끼게 될 것이다. 동유록을 보면, 글로벌 시대에 가장 주요한 세계 3개 국어가 시로서 압축된 표현에서 비교문학의 안목을 갖게 하기도 한다.한시의 묘미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잘 번역되었는가 필자는 비평안이 없어서 말할 수 없지만 아들의 효성으로 나온 동유록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글 = 김승곤(전북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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