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과 풍수
명당과 풍수
  • 김동수
  • 승인 2019.01.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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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에선 일찍이 천지 만물을 음과 양의 화생(化生)으로 보고 그 중화(中和)를 이룬 곳에 명당이 있다고 여겨왔다. 그러기에 그러한 터에 집터나 묘소를 택함으로써 그 땅 기운으로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왔다. 형국에 따라 그 명칭과 효험 또한 각양각색이다.

 와우혈(臥牛穴)을 썼으니 의식이 풍족하고, 옥녀산발(玉女散髮)이라서 미인이 많고, 안산(安山) 앞으로 냇물이 도도하게 흘러 관운이 좋고, 물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니 우환이 그치지 않으며, 청룡과 백호혈이 약하니 재물이 귀하다는 등, 산세의 기복과 수구(水口)의 흐름에 따라 그 영험 또한 천태만상으로 다르다 한다.

 효험이 제일 속(速)하다는 인장묘발(寅葬卯發) 명당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산골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엄동설한에 노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곤궁한 살림이라 궁리 끝에 날이 새기 전 동네 뒷산에 몰래 시신을 묻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주인집 영감이 선친을 모시려고 구해 놓은 명당자리였다. 아무리 자기 땅이라 해도 이미 묻은 시신을 다시 파내게 할 수는 없기에, 그 머슴을 할 수 없이 사위로 삼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문자 그대로 인시(寅時)에 하관(下棺)하여 묘시(卯時)에 발복한 인장묘발(寅葬卯發)의 명당자리가 아닌가.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높아도 3대가 적선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게 명당이라 하니 아마 그 머슴의 집안은 대대로 착한 심성의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수사상이 자칫, 자신의 노력에 의한 대가보다는 위력에 힘입어 요행을 기대하려는 의타심으로 많은 물질과 정력을 낭비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잊지 못한다. 내 어린 시절 나의 손목을 이끌고 성묘 길에서 들려주셨던 집안 어른들의 명당 이야기. “저 묘는 네 5대조 묘인데 그게 숙호혈(宿虎穴) 명당이라서 몇십 년 후에는 우리 집안에서도 큰 인물이 난다고 황 풍수 영감께서 말씀하셨단다.”

 이런 말씀들이 어린 날의 나를 숙연하게 압도하곤 하였다. 그래 나는 무엇인가 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집안을 일으키고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몇 년 전 한식날이었다. 그동안 명당을 찾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조부모님과 증조부모님 산소를 고향 인근에 있는 대종중 선산으로 모셔왔다. 나이가 들다 보니 우선 성묘하러 다니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도 부담될 것 같아 결단을 내린 것이다. 힘은 들었지만 한 곳에 다 모셔 놓고 보니 보살피기에도 편해 좋았다. 말하자면 새로운 명당이 마련된 셈이다.

 보기 좋은 집터와 풍광은 좋은 에너지가 발생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활기를 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오늘도 우리는 배산임수 남향동문의 전원주택과 목 좋은 상가 그리고 풍광이 좋고 접근성도 좋은 쾌적한 아파트 로얄층을 찾는다.

 하지만, 옛말에 ‘길인주처시명당(吉人住處是明堂)’이란 말이 있듯,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만 명당이 있는 게 아니다. 어진 사람이 사는 곳이 바로 명당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명당이란 그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숭조화목(崇祖和睦)의 정신으로 한집안의 후손들이 각자 몸을 세워, 자신과 집안을 일으키면서 세상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삶이 되고자 노력할 때 또 하나의 명당이 새롭게 탄생하여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동수<시인/미당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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