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 서정환
  • 승인 2019.01.22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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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화의 말을 빌리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영적 스승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언제나 화를 내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승이 말했다. “그대는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받은 오래된 상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그것 때문에 많이 약해진 것이다.” “저는 작은 일들 외에는 큰 상처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떻게 먼 과거의 상처들이 지금의 나를 약하게 할 수 있죠?” 스승이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물병을 그 사람에게 주며 말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이 물병을 들고 있어보라. 무거운가?” “아닙니다. 무겁지 않습니다.” 10분 후 스승이 다시 물었다. “무거운가?” “조금 무겁지만 참을 만합니다.” 시간이 흘러 스승은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떤가?” “매우 무겁습니다. 더 이상 들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말했다.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 있을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그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예화 하나 더 들어보자. 네팔에서 트레킹할 때의 일, 포카라를 출발, 일주일 넘게 걸어 3천8백 미터의 묵티나트로 가는 여정이었다. 좀솜 마을은 작은 공항이 있는 산악지대의 요충지라 여행자가 많고 숙소도 다양했다. 일행은 공항 부근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방은 지저분하고 음식도 열악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트레킹 코스의 숙소는 하룻밤 묵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다시 출발했다. 마른 강바닥을 따라 반나절 넘게 걸었고, 얕은 물길도 통과하고 흔들다리를 건너고, 노새들의 행렬과도 마주치는 그 길은 멀리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닐기리 등 신비롭게 솟은 히말라야 영봉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일행 중 한 명이 내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일을 상기시켰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불쾌한 감정, 그리고 이전 마을에서의 또 다른 경험들을 비교하느라 현재의 여정을 즐길 수가 없었다.

 그의 트레킹은 무거운 배낭과 부정적인 기억들에 짓눌린 여정이었다. 그가 마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길, 발바닥의 물집, 불편한 게스트하우스와 맛없는 음식의 경험 등을 다 포함하는 트레킹이다. 그가 계속 불평을 늘어놓자 일행은 하나 둘 그와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트레킹 일정 내내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마음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분노를 느낄수록 현재를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마음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본다. 가는 실에라도 묶인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 모두 암울했던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자.

 서정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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