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三平)을 논함
삼평(三平)을 논함
  • 조배숙
  • 승인 2019.01.21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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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바뀌었다. 새해는 전과 다른 기대와 희망을 안겨준다.

 그러기에 누구나 가슴 한 편에 소중한 다짐 한가지쯤 담아둔다.

 필자 역시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깊은 고민이 있다.

 2019년은 3.1운동과 임정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전과 ‘다른 백년, 전환과 모색’이 필요한 때다. 다른 백년을 예비하며 나라와 국민의 미래비전을 제시할 책임이 정치에 있다.

 하지만, 당리당략과 진영논리, 낡은 이념의 편 가르기 늪에 빠진 현 정치권이 이 같은 미래비전을 담보해 낼지 의문이다.

 지난해 말 거대 양당의 예산안 야합처리를 두고 “더불어한국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무능하고 ‘타락한 진보’와 부패하고 ‘오염된 보수’의 적대적 공생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난파 직전 자유한국당을 구조한 건 적폐세력이라 공격하던 더불어민주당이다. 가히 역사적 아이러니다.

 다른 백년을 예비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바로 거대 양당이 누려온 정치 기득권 해체다.

 선거제 개혁도, 다른 백년의 기초가 되어야 할 개헌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깊은 고민의 지점이다.

 루쉰은 희망이 길이라 했다. 희망을 찾아 없던 길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지난 온 길을 돌아보았다.

 국민들은 국가에 공평하냐고 묻는다. 우리 사회가 공평하다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흙 수저 금 수저 논란부터 갑을의 종속 관계, 병역과 취업 등 특혜 시비까지 경쟁과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

 ‘좋은 사회’가 못 된다는 거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심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국민들은 또 묻는다. 국가는 국민들을 형평 있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있는가?

 사회가 다양화되고 고도화될수록 권리충돌 역시 다양화 고도화된다.

 전에 없던 권리투쟁, 사회갈등도 빈번해진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 갈등 양상은 증오와 혐오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거꾸로 정치적 이해득실을 쫓아 철지난 흑백논리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권의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흑백논리는 필연 진영 간 갈등으로 비화한다.

 소수의 결집한 힘들이 마치 국민 여론인 양 호도되는 경향도 흔한 일이 되었다.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민주주의는 다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그 가치를 발한다.

 형평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척도다.

 마지막으로 화평(和平)할 수 없는 것인가? 묻는다.

 불화는 갈등만 양산한다.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 사회가 좋은 사회일 수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한 화평을 구하기 어렵다.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대화와 타협의 길은 열린다.

 지역차별과 양성평등, 한반도 평화 역시 다름을 인정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화평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공평하고, 형평이 있어야, 화평도 기대할 수 있다.

 기해년 새해, 공평과 형평 그리고 화평의 삼평(三平)정치로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보고자 한다.

 ‘도저한 정치’의 새로운 길을 생각하며 새해 다짐을 적어본다.

 조배숙<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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