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뭘 잘못했나요?
돼지가 뭘 잘못했나요?
  • 장상록
  • 승인 2019.01.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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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이 마을 근처엔 사자도 살고 있다. 그런데 마사이 어린이 혼자서도 들판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사자에겐 두려움이 있다. 마사이족 어린이를 해치는 순간 자신에게 돌아올 파멸적인 복수에 대해.

 137억 년 전 빅뱅에 이어 태양계가 탄생한 것이 46억 년 전이다. 그리고 6억 년 전 지구상에 생명이 출현한다. 인류의 출현 시기는 높여 잡아도 현재까지는 7백만 년 정도다. 그것을 현생인류로 국한한다면 불과 10만 년에 불과하다 그동안 지구상에 등장했던 생물 99%가 멸종했다. 덕분에 오늘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다. 아종(亞種)이 없는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부터인가 지구상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 만물의 영장. 마사이 사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바퀴벌레도 같은 생각일까. 오늘도 인간은 그 혐오스러운 녀석들을 박멸하기 위해 애를 쓴다.

 3억 7천만 년 전, 공룡과 같은 시기에 출현해 99%의 지구 생명체가 멸종되는 것을 지켜 본 그들에게 인간은 가소로운 존재인지 모른다. 그들이 생존해온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시대는 찰나에 불과하다.

  당장 370년 후 인류의 생존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다. 화성(火星)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마사이족과 함께 사는 사자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상위 포식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예측 불가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것은 맹수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깨트린 장면이 있었다. 뉴질랜드 남섬에서의 일이다. 밀포드 사운드로 향하던 여정 중간에 잠시 쉬게 되었다. 차에서 내린 내게 앵무새 한 마리가 다가왔다. 나에게 다가온 녀석에겐 두려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내게 하는 응석과 같았다. 이 귀여운 녀석은 뭐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처럼 대하는 앵무새. 뉴질랜드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부가적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장면이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육식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고 나 역시 삼겹살과 먹는 소주 한 잔의 유혹에서 초연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더욱 동물에 대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가 있다. 헌법에 도살조항을 규정하는 것이나 유목민이 가축을 도축할 때 죽음의 고통을 짧고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유목민은 자신의 소중한 동료를 떠나보낼 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구나. 너의 죽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한다.”

 시골 고시원에서 생활할 때다. 원생 한 명이 돼지 한 마리를 가져왔다. 다음 날 나는 돼지 도축을 처음 목격했다. 죽게 될 운명을 알았을까. 돼지는 먹이를 먹지 않았다. 그리고 표정엔 공포가 선명했다.

 ‘아, 돼지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 느끼고 있구나.’ 삼겹살을 즐겨먹는 나였지만 식탁에 오른 녀석에게 손이 가지 않았다.

  돼지를 불결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불결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돼지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학대한 인간이 그 결과로 초래된 불결함에 대해 돼지 탓을 한다? 그것은 양돈업에 종사하는 분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신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조물주의 섭리는 놀랍다. 식물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병이 동물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자를 인간이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이유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동물은 지구상에서 이미 멸종했을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섭리를 위협하는 거의 유일한 종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이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개인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인간이 바퀴벌레보다 오래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지구는 인류 없이 시작 되었고 인류 없이 끝나게 될 것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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