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임세원 교수가 꿈꾸던 세상을 위해
故임세원 교수가 꿈꾸던 세상을 위해
  • 김광수
  • 승인 2019.01.20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를 하루 앞둔 2018년 마지막 날, 강북삼성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故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와 진료 상담 중 수차례 칼에 찔린 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형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하고 보급에 힘쓰며 평소 정신건강과 자살예방을 위해 노력했던 고인의 사망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었던 의료인 안전 문제와 함께 정신질환자의 체계적인 치료·관리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제기했다.

 사실, 정신과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경남 양산의 한 정신병원에서 의사가 재입원을 권유하자 갑자기 집에서 가지고 온 흉기로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으며, 2013년 대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응급의료방해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응급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830건에 달했다. 폭언과 욕설이 338건, 위계 및 위력이 221건, 기물파손 및 점거가 72건, 난동 및 성추행도 587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에서 제출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현황’에서도 같은 기간에 응급의료 종사의 진료를 폭행·협박·위계·위력 등으로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등을 파괴·손상하는 등의 위반행위로 검거된 인원만 1,126명에 달했다.

 이처럼 의료계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의료인 안전 문제에 대한 경고음을 계속해서 내보였음에도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정부의 미봉책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 강북삼성병원 사건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본 의원은 지난해 남원의료원에 내원한 환자가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폭언과 함께 칼로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2018년 8월 ‘응급의료법’과 ‘의료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하였고, 이 가운데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응급의료법과 달리 의료법 개정안은 여전히 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해 표류 중에 있다. 그 이유는 법안소위 당시 “폭행 등 안전관리에 대한 지원 부분은 의료기관 자체에서 해야 할 기능인데, 국가가 혹은 지자체가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복지부가 반대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복지부는 부랴부랴 진료실 내 대피통로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인력 유지 여부 등을 파악하고, 향후 학회와 함께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제도적·재정적 지원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에서 사전에 이런 대책들을 제안할 때는 신중을 기한다면서 반대를 하다가 사건이 터지고 여론이 들끓으니 지원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급선회하는 정부의 사후약방문식(死後藥方文) 대책에 우려를 금치 못한다. 오죽하면 ‘사람이 죽어야 대책이 세워진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번 故임세원 교수의 죽음은 단순 사건이 아닌 정부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치료 및 관리대책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문제이기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故임세원 교수의 유가족 역시 고인이 정신질환자가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고 밝힌 바 있는 만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양지에서 편견 없이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 개인에게만 모든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정신의학에서 정신병은 감기와 같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에 의료인의 안전 보장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정신질환자의 지속적인 치료·관리시스템을 정상화시켜 故임세원 교수가 꿈꾸던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광수<국회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