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술의 논쟁
차와 술의 논쟁
  • 이창숙
  • 승인 2019.01.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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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5>
당나라때 차통(차 바구니)

 차는 마실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술은 마실수록 취하니 요즘 같은 세상에 정신 바짝 차리고 살려면 차가 제격이다. 하지만 어찌 차맛 만 즐기겠는가. 가끔 술 생각이 절로 나는 경우도 있을 터이다.

  돈황문헌(敦煌文獻) 중에 「다주론(茶酒論)」이 있다. 이는 차와 술이 서로 논쟁을 벌이는 내용으로 의인화한 대화체 문장이다. 차와 술이 서로 잘난체하며 자기 공이 크다고 주장하는 재미있는 글이다. 이에 물이 가세하여 물이 있어 좋은 차와 술도 있으니 서로 잘 지내라고 충고한다. 차 산지와 술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어찌 보면 서로 다른 성질의 차와 술의 장단점을 통해 소통과 화합을 권하며 차와 술을 광고하는 내용인 듯싶다. 내용을 보면,

  차(茶)가 먼저 말하길 “나는 백초 가운데 으뜸이요. 만물의 정화라. 그 꽃술을 취하고 소중한 싹을 따는 까닭에 명초(茗草)라 하지요. 차를 만들어 귀족과 제왕에게 바치니 평생 귀한 대접을 받는 신분이요. 제때에 신선한 것만 바치니 당연히 존귀할 수밖에 없네.” 차는 자신의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귀하다고 자랑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술이 답하길 “차는 비천한 것이고 술은 귀한 것, 군왕이 술을 마시면 신하들이 만세를 부르고, 신하들이 마시면 두려움을 없애준다. 삶과 죽음 앞에서도 평온하게 하니 신령께서도 나를 음미하며, 법도는 있고 악의는 없네.” 술은 용기를 주고 군주와 신하가 화합하는 역할을 한다고 뽐낸다.

 이에 질세라 차가 다시 말하길 “명승대덕이 참선할 때 마시며 졸음을 쫓고 부처님께 공양물로 받치네. 이런 탓에 차 생산지에 상인과 애호가들이 몰려들어 차를 구하니 성황을 이룬다. 술은 사람을 어지럽게 하고 가산을 탕진하며 사악한 짓을 하니 많이 마시면 시끄럽고 무고한 사람을 음해도 한다”는 등 차의 인기와 술의 단점을 말하며 차를 칭송하고 있다.

 술도 답하길 “차를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춘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술은 즐거워 노래하고 춤을 추게 한다. 술은 근심을 없애주는 약이며 또한 현명함을 길러준다오. 차는 많이 마시면 배탈이 생겨 고통을 호소할 것이다.” 술의 약성을 말하며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유를 말한다.

 차가 다시 말하길 “차를 마시면 병이 나고 술을 마시면 현명해진다고 했는데 술을 마시면 병이 생겨도 차를 마시면 병이 난다는 말을 듣지 못했소.” 이때 듣고 있던 물이 나선다.

  “차(茶)군! 주(酒)군! 차가 좋은 물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술 또한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없으면 너희들은 모습도 없다. 누룩만 먹으면 배가 아프고 찻잎을 그대로 먹으면 목이 상한다. 그러니 둘은 사이좋게 지내라. 물은 오곡의 시작이요 서로 통할 수 있는 근본이라. 서로의 공덕을 다투기보다는 화목하게 지내면 술집이 돈을 벌면 찻집도 또한 형편이 좋을 것이다.” 차는 차분하고 담백하며, 술은 뜨겁고 호방한 음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 문신으로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시·술·거문고을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선생이라 불렸다.

  그의 시중에 차와 술을 논하는 시가 있다. “… 물건 하나 없는 쓸쓸한 방장에서 차 끓는 소리 듣기 좋구나. 막 돋아난 차싹을 따서 선사에게 올리려 한 듯, 종놈이 차 훔쳐 마시고 코 골던 소리 잠잠하구나. … 향기로운 차 아껴 간직하고 함부로 주지 마오. 마음의 티끌 씻어 물같이 맑게 한다오. 스님께 봄 술을 빚으라 권함이 어이 잘못이겠는가. 술에 취한 후에야 비로소 차의 참맛을 알기 때문이지.”

  그의 나이 63세에 부안현 위도로 귀양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지은 시로 알려진 “감곡사에서 놀다가 노스님에게 주다”라는 시이다. “근거없는 소문으로 인해 한적한 마을에 있다가 자비로운 부처님 보았네”로 시작된 이시는 끝 구절에 “돌솥에 차 끓이니 향기로움에 젖어 화로에 불붙이니 마치 저녁노을 같구나” 차의 향기로움에 젖어 마음을 달래는 시이다. 삼혹호 선생이라 불린 이규보도 마음을 달래기에는 술보다 차가 좋았던 것 같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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