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본방은 시작도 안 했는데…
아직 본방은 시작도 안 했는데…
  • 이흥래
  • 승인 2019.01.17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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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여 만에 붙잡힌 최규호 전 전라북도 교육감과 그의 도피를 도왔던 최규성 전 한국 농어촌공사 사장 등에 대한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어 조만간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육감 재직시 거액을 뇌물을 받았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자 염치불구하고 도망쳐 8년여 동안 잘 살다 잡혔으니 뭘 더 숨기고 말 것도 없을 듯하다. 또 거물 정치인인 동생도 형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 잡기는커녕 도피를 도왔으니 단죄를 받아도 할 말은 없을 듯싶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것은 그런 저명인사가 사법기관에 출두하기 전날 갑자기 왜 야반도주를 해야 했을까이다. 보통 교육자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을 받아 챙길 그런 위인이 고작 감방생활이 무서워서 달아났을까. 하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고 매달 7-800만원을 펑펑 쓴 황제 도피생활 정도만 알려져있다. 과연 이들 형제는 무엇 때문에 이런 위험한 행각을 계속해야 했을까.

 과거 언론인 생활 동안 접해 본 최규호 전 교육감은 대단히 용의주도한 인물로 기억된다. 보통교육과는 별 관련이 없었던 농대 교수가 왜 콧물 묻은 아이들 곁을 얼쩡거리느냐는 핀잔에도 개의치 않고 교육위원이 된 최씨의 마각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교육계의 인사철만 되면 수십 명의 인사 대상자 명단을 관련부서에 넘기는 갑질을 해댔고, 이같은 사실이 정보기관과 언론에 포착돼 상당기간 곤욕을 치르게 된다. 거의 매일 인사청탁의 주범으로 언론에 오르내리자 어느날 그는 나를 찾아와 교육위원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히게 된다. 그 때문에 점차 언론의 비난이 줄어들자 얼마후 그는 슬그머니 교육위원에 복귀했고, 교육감 선거에서도 단임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그게 지켜질 약속이었던가. 교육감 재직 동안 최씨의 주요 관심사는 인사였는데 자신보다 앞선 교수 출신 교육감이 인사분야 대리인까지 두고도 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지만, 최씨는 단 한 차례도 잡음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받은 만큼 해주고 원한 대로 해주었으니 누가 시끄럽게 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랬던 최씨가 갑작스럽게 골프장 뇌물사건으로 3선도전을 포기하자 주변에선 인사관련 본방은 시작도 안했는데 예고편만 터져버렸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최씨가 달아나자 당시 교육계에선 차라리 그가 잡히지 않길 바랐다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다.

 인사문제로 최씨에게 갖다 바친 많은 이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 때문에 최씨도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최씨가 두 번의 교육감을 지내는 동안 받은 뇌물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교육감을 지냈던 모 씨의 아들이 사업한다고 수십억 원을 말아먹었다는 얘기도 있는 걸 보면 베테랑인 최씨는 훨씬 많았을 것이고, 그 숨 막힐 듯한 규모의 유혹에 동생도 말려든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최씨가 몇 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숨겨놨던 거액의 돈으로 뻔뻔스럽게 테니스치고 골프 하면서 여생을 마치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도망친 시간동안 꼭꼭 숨겨버려 추적이 어렵기는 하겠지만, 도피자금을 추적하면 뇌물의 저수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나저나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런 웃기는 인물을 교육감이랍시고 뽑았던 더 웃기는 손가락들은 지금도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도 속으로는 몹시 창피할 듯하다.

 이흥래<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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