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고 피눈물, 전북은 외면하는가
상산고 피눈물, 전북은 외면하는가
  • 김창곤
  • 승인 2019.01.15 17: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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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가르친 게 죄다. 2002년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지정받을 때부터였다. ‘특권 교육’으로 평등 교육을 파괴한다는 죄목이 씌워졌다. 신입생 선발권을 박탈하려는 교육부를 상대로 위헌 소송 중인 상산고가 또 다른 존폐 기로에 섰다. 자사고가 5년마다 받아야 하는 교육청 평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자사고 전환 8년 뒤 생긴 평가였다. 2014년 첫 평가는 무난히 통과했다. 문제는 자사고 재지정 기준을 올해 유독 전북교육청만 교육부보다 높인 데 있다. 다른 시도(23개교)는 커트라인을 교육부 표준대로 작년보다 10점 올려 70점인데 전북은 20점 올려 80점이다. 상산고는 5년 전 80.8점을 맞았으나 이번 평가는 까다롭다. 다른 시도에선 70점 기준에도 ‘자사고 폐지를 위한 평가’라는 반발이 나온다. 31개 평가지표 중엔 ‘○○적정성’처럼 점수 매기기 어려운 항목도 많다. 이번엔 재평가 기회도 주지 않는다.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다. 정부가 그래서 지난해 신입생 선발권을 뺏으려 했고 올해 재지정 기준을 높였다. 그런데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공약을 실현하기에 정부 기준이 오히려 낮다는 주장이다. 그는 “교육부가 (형평성을 들어) 전북을 문제 삼으면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교육부 표준을 따른 전남은 “우리 교육감도 진보 성향이지만 설립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는 자사고를 굳이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인 권고로 시작된 자사고였다. 평준화에 따른 획일 교육을 보완하고 다양성과 수월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학생 납입금 총액의 25%를 학교가 부담케 하면서 학생 선발권과 교과 편성 자율권을 주었다. 1981년 상산고를 세운 홍성대 이사장은 “자사고 도입이 반가워 잠을 못 이뤘다”고 돌이켰다.

 원조 자사고의 한 곳인 상산고는 후발 자사고 모델이 됐다. 국내외 명사·석학 특강에 양서 읽기, 생활영어, 수학·과학 심화수업도 펼친다. 철학·음악 수업은 2학년까지, 체육은 3학년까지 계속된다. 졸업생 모두 태권도 유단자다. 교직원은 탁월한 대입 성적으로도 노고의 보람을 누린다. 홍 이사장은 16년간 교육 기반 구축에 학생 납입금의 77%인 451억원을 보탰다. 1,000여 전교생을 수용하는 기숙사 건립에도 190억원을 들였다.

 형제끼리도 능력과 소양이 다르다. 미국과 영국 중국에서도 매년 수천만원씩 들여 자녀를 명문 사립고에 보낸다. 일본에서도 수월성을 높이려 일반고가 특목고로 바뀌고 있다. 이 나라 교육에 불어닥친 평등주의와 포퓰리즘은 잘 자란 나무를 쳐내고 키 낮은 숲을 만들려 한다. 상산고 미래가 불안해지면서 올해 입학경쟁률은 1.32대 1로 크게 낮아졌다. 여든셋 나이 홍성대 이사장은 최근 헌재 심판정에서 고통과 절망을 호소했다. 그는 “교육을 한다는 사람이 어떤 교육이라도 마다하지 않아야겠지만 학교 문 닫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가 교육에 투신한 것은 <수학의 정석>으로 얻은 수익을 고교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책무감에서였다. 그는 그의 세대가 그랬듯 ‘흙수저’로 뜻을 이뤘다. 고향 태인에서 남성고에 진학한 뒤 자전거로 비포장길 8㎞를 달려 신태인-익산을 기차로 통학했다. 장마철과 겨울엔 친구 자취방 신세를 지기도 했다. 자취와 하숙, 가정교사 입주까지 15차례나 거처를 옮겼다. <수학의 정석>은 대학 시절 등록금 책값 하숙비 등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고학의 산물이었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고교수학 인기 강사가 됐다.

 홍 이사장은 태인에 도서관을 세웠고, 서울대에 ‘상산수리과학동’을 지어 기증했다. 그가 일군 상산고는 공항과 도로, 산업·관광단지 못지않게 소중한 지역 인프라다. 기업을 유치하려 해도 이런 학교가 있어야 한다. 그는 “정부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쏟아온 열정이 억울하다”며 “좋은 학교를 만들고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싶던 꿈과 자부심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가 누르고 있는 피눈물을 지역 사회는 바라만 볼 것인가. 이런 곳에 미래가 있을까.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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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 2019-01-15 22:06:14
공감가는 기사내용 잘보고있습니다. 항상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혜진 2019-01-16 09:11:54
피눈물로 이룬 학교 훌륭하네요! 설립자의 행보만 잘 아시는것 같아 유감이네요 위인전 내용도 아니고ㅜㅜ
반문해 보지요 재학생의 대부분이 나라의 교육취지와 다르게 정시로 대학가고 졸업생의 과반수가 재수의 길을
선택하는 학교의 현실이 펙트입니다 이 결과를 과연 학생의 선택으로만 치부시킬 일인지....도대체 외국의 어느사립고가 이런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을 하고 있는지 ... 비교대상이 아니고요 주요과목 비중이 50프로를 넘기는 내신과 치열한 구조에서 철학수업과 양질의 독서가 제대로 운영되는지도 의문점이네요 다들 천재학생만
일반고로 전환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지... 우리나라는 일반고가 더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