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己亥年) 1월, 황금돼지의 만복이 가득하길
기해년(己亥年) 1월, 황금돼지의 만복이 가득하길
  • 정영신
  • 승인 2019.01.14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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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해년(己亥年) 1월이다. 올해 기해년은 특별히 번쩍 번쩍이는 황금 돼지의 해[年]이다. 물질만능의 시대, 황금만능의 시대, 돈이면 다 될 것 같은 이 회색빛 시대에, 곳곳의 복권가게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기해년의 시작 1월, 이 숫자 1은 하나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사물 전체와 태극을 나타낸다. 음양의 이치에서 보면 하나[-]는 아무와도 섞이지 않은 순양(純陽)의 수로서, 최초의 수이면서 이 하나로부터 모든 사물이 생겨난다. 그래서 신화 속의 하나인 신은 전지전능한 완전한 존재이며, 신격을 부여받은 통치자나 건국신화에서의 시조는 하나의 세계를 장악하기에 하나이면서 전부를 소유하는 완전한 인격체이다. 또한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곰과 범에게 준 쑥 한 묶음에서의 ‘한[一]’은 인간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 ‘한’은 많다, 크다, 높다, 거대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또 1은 최초의 수로서 길수(吉數)로 여겼는데, 아들을 선호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전녀위남(轉女爲男)’의 민속이 존재했으며, 양수인 홀수가 남성이고 음수인 짝수가 여성이라는 음양사상에 기초하여 순양(純陽)인 1은 아버지를 의미하고 순음(純陰)인 2는 어머니를 뜻했다. 그래서 1과 2의 결합으로 다시 양수인 3이 생겨나고 그 3은 당연히 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1은 ‘한 손뼉이 울지 못한다.’에서처럼 고립을 뜻하고, ‘한솥밥 먹은 사람’은 동일함을 의미하며, ‘한 냥짜리 굿하려다 천 냥짜리 징을 깨뜨린다’에서의 ‘한’은 아주 적거나 미미한 존재를 뜻한다. 또한 1은 무한한 가치나 단조로움, 통일이나 단합, ‘뜰 앞의 잎새 하나’에서처럼 외로움을 의미하며, 서정주의 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에서는 추구해야 할 이상을 뜻한다. 또 1 즉 하나는 아쉬움이나 ‘청춘은 하나뿐’에서처럼 귀중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해년 황금돼지의 해이다. 돼지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지저분한 가축의 의미와 신과 인간의 전령체로서 신성시 여기는 양가적(兩價的) 동물이다. 본래 돼지는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과 대등한 말로서 어린 새끼를 일컫는 명칭이었다. 그런데 ‘돝’이라는 어미돼지의 고어가 사어(死語)가 되면서 돼지가 돝 대신 대표 표준어가 되고 도야지는 방언이 되어 돼지만 새끼를 의미하는 명칭이 사라졌다. 이 돼지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영국의 철학자 밀의 말처럼 흔히 탐욕스러운 대식가나 야비한 본능, 간음, 질투, 탐욕, 이기, 분노, 울분 등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이문열의 <필론과 돼지>에서도 주인공 그는 군을 제대하고 주머니 사정 때문에 용산역에서 고향으로 가는 군용열차를 타고 가던 중, 베레모를 쓴 현역병에게 돈을 빼앗기고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결국 한 마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고 만다, 그는 그처럼 조금은 비열해 보이는 자신을, 폭풍우에 갇힌 위기의 상황에서 무심하게 잠만 자고 있던 돼지의 행태를 그대로 흉내 내고 마는 현자 필론에 빗대면서 소설을 마무리했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돼지를 무능하고 의식이 없는 무용(無用)의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의 모티하리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에서 메이너 농장의 원로인 늙은 수퇘지 메이저를 ‘나이가 12세로 최근 몸이 좀 불고, 이는 한 번도 자른 적이 없지만, 여전히 현명하고 자애롭고 위엄이 넘쳐 보인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동물 중에서 돼지가 제일 똑똑하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자연스레 돼지들의 몫이 되었다.”며 돼지를 소, 말, 개, 양, 토끼, 쥐, 비둘기 등 동물농장의 가축들 중 문자도 가장 먼저 읽고 쓰고 깨우칠 만큼 제일 우수한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지도자인 돼지 나폴레옹은 농장 동지들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고 그들이 경멸하던 농장주인 존즈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으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처럼 돼지는 돼지우리, 돼지밥, 꿀돼지처럼 더러움과 탐욕, 애욕, 미련함, 게으름의 상징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사실 돼지는 목욕을 좋아하며, 집을 지킬 정도로 영리하고, ≪삼국사기≫ 유리왕편에서도 돼지로 인해 도읍을 옮길 만큼 이 돼지는 신의 뜻을 전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신라 태종 무열왕도 진상품인 돼지를 보고 천하를 통일할 상서로운 징조로 풀이했고, 많은 설화문학에서도 돼지는 길조를 나타내는 존재로 귀히 여겨서 재산이나 복의 근원으로 ‘업돼지’처럼 집안의 수호신이나 재신(財神)으로 신성하게 생각했다.

 기해년의 1월이 벌써 중순을 넘어서고 있다. 어느새 먼 산의 양지녁에서는 향긋한 꽃바람이 이른 봄을 몰고 서서히 달려오고 있다. 황금돼지의 해 기해년에는 모든 가정마다 일터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불우한 이웃들과 이 사회와 국가에 황금돼지의 만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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