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시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동일시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 이문수
  • 승인 2019.01.10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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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 그림 그리는 화가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미술부에 들어가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매혹적이어서 4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똑 떨어지는 목표를 갖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구름에 달 가듯이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온 것이다. 그 세월을 같이하면서 맺어진 인연들이 얽히고설켜서 놀고(?) 있는 터전이 전북미술판이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판인지라 편안하지만, 더러는 건강한 담론보다는 서로 묻어가는 정서가 강하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이 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한다.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상황에서 벗어나, 보자기처럼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열린 마당에서 역동적인 아시아 현대미술이 자유롭게 환류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만 건실한 씨앗이 제자리를 잡고 백화제방(百花齊放)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전북도립미술관이 주체적 시각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을 바라보면서, 기획전시 및 창작스튜디오의 인적교류를 통해 전북과 아시아 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전북미술가를 아시아에 보내고, 아시아 미술가를 전북에 불러들여 교류와 연대를 강화하면서 폭넓고 다채로운 아시아 현대미술의 동시대적 상황을 예술로 규명하기 위한 야심 찬 걸음이다.

 ※‘지도리’는 장자(莊子)의 <재물론편>에 나오는 도추(道樞)에서 비롯한다. 쉬운 의미로 문의 여닫이를 원활히 해주는 경칩의 둥근 중심축을 말한다.

 2018년에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에 집중했다. <변방의 파토스> 展(2018.07.03~10.14)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자유도가 높고 생동감이 충만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제대로 담았고, 전북미술과 견고한 연대를 구축했다”는 호평에 힘입어 연장전시를 했다.

 미술관 학예연구팀은 수차례 베이징을 오가면서 전북미술이 베이징으로 향하는 물꼬를 텄다. 특히 쑹좡화가촌은 장샤오강, 팡리준, 쩡판즈, 위에민준 등 걸출한 중국 현대미술가를 배출한 곳이다. 현재는 비공식적인 추산이지만 이만 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이곳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고, 세계미술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6월에는 <북경 發 전라특급> 展(2019.06.11~08.25)을 개최해서 베이징 쑹좡과 전북미술의 품격을 선보일 것이고, 10월에는 인도네시아 “족자 비엔날레”와 “쑹좡 국제아트페스티벌”에 전북미술가를 파견할 예정이다.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많은 미술가가 힘을 보태면서 이제 작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전북미술을 새롭게 여미고, 대외적으로 진출해서 드러내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같이 걸어야만 한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더불어 꿈꾸면 그 꿈은 이미 현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시아는 제국주의 패권에 의해 식민으로서 근대를 맞이한 아픔을 갖고 있다. 현대화의 과정은 급물살처럼 격동했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아시아는 스스로 가치를 간과하고 낯설게 느끼게 되었다. 한국사회도 곳곳에 그 역사의 상처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 안의 사대주의, 서구인의 뒤틀린 오리엔탈리즘, 그로 인해 형성된 옥시덴탈리즘. 하지만 이제는 자신감 있게 눈을 뜨고 지금, 여기에 주목하면서 가치 있는 것들을 추슬러 가야 한다.

 서구화가 곧 발전이라는 동일시의 오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 서구미술이 갖는 메커니즘에 대한 일방적 추종은 이제 더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타자에 의한, 혹은 타자로서의 아시아가 아니라 내밀한 자기 언어에 집중하며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미술관은 명징한 특성화 전략을 통해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심축 역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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