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의 내 마음의 차
한재의 내 마음의 차
  • 이창숙
  • 승인 2019.01.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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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44>
정선의 〈금강산도〉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의 〈금강산도〉 (간송미술관 소장)

 처음부터 차는 ‘차(茶)’라 하지 않았다. ‘도(씀바귀 도)’자에서 ‘차(茶)’자로 변하였는데 시기는 중당(中唐) 때부터 이다. ‘도’는 씀바귀나 띠풀, 육지의 풀 등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육우(733~804)는 혼용되어 쓰였던 도를 차와 구별하기 위해, 도에서 차의 의미로 처음 쓴다. 그는 도자에서 한 획을 줄여 차(茶)라 했다. 도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 획을 줄여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차에 대해 기록한 육우의 『다경(茶經)』으로 인해 사람들이 차 맛을 알고 천하에 차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차라는 글자와 차의 맛은 많은 이들에게 전해진다.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을 담은 차 맛은 사상가와 애호가들에게 칭송되어 때론 양생의 물질로 표현된다.

 무릇 사람은 좋아하는 바가 있다. 물질을 좋아하여 그것을 완상(玩賞)하고 음미하여 종신토록 좋아하는 것은 그의 성품 때문이다. 이백(李百)이 달을 좋아하고 유령(劉伶)이 술을 즐긴 것처럼 좋아하는 바가 달라도 즐김에 이르러서는 한가지이다.

 나는 차를 알지 못했는데 육우의 『다경』을 읽고서 차의 성품이 보배임을 알았네. 이렇게 시작된 한재(寒齋) 이목(李穆,1471~1498)의 『다부(茶賦)』는 그가 젊은 나이에 쓴 한국 최초의 다서(茶書)이다.

 차의 공덕을 칭송하여 차의 종류, 차 산지·환경 등 차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차를 마신 뒤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내용은 많은 이들의 이상세계를 담고 있다. 한재의 글을 통해 젊은 나이에 그가 품었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니 메마른 마음을 부드럽게 씻은 듯하고, 둘째 잔을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고 신선이 된 것 같다. 셋째 잔을 마시니 병마가 사라지고 두통이 없어지네. 나의 마음은 공자와 같은 마음이라 세상이 뜬구름과 같고 맹자의 호연지기를 기른다. 넷째 잔을 마시니 웅대한 기상이 생겨 걱정과 화가 사라진다. 나의 기백은 태산에 오른 듯 천하가 저리 작은데, 하늘을 우러러 용납할 수 없는 것인가. 다섯째 잔을 마시니 색마도 놀라 달아나고 음식을 탐하는 시동의 눈이 멀고 귀머거리 되는구나. 내 몸은 구름 치마에 깃털 옷을 입고 백난조를 채찍질하여 월궁으로 향하는 듯하네. 여섯째 잔을 마시니 해와 달이 내 마음에 들고 모든 만물이 거적처럼 느껴지는구나. 나의 정신은 소보와 허유를 몰아내고 백이와 숙제를 종복으로 삼은 듯하여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읍하노라. 어찌하여 일곱째 잔은 비지 않았는데 향기가 마음속에 일어 맛과 신묘함이 극에 달하니 울창한 봉래산 보는 듯하구나.

 셋째 잔의 공자의 마음은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베게 삼아도 즐거움이 있으니, 의롭지 않게 부를 누리고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는 구절을 인용한 글로 세상의 덧없음을 공자의 마음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한재는 차의 공(功)을 논한 뒤 6가지 덕(德)을 차의 효능에 맞춰 덕목으로 표현한다. 첫 번째 덕은 사람이 천수를 누리는 것으로 요순과 같은 덕이다. 두 번째 덕은 병을 낫게 하는 것으로 명의(名醫) 편작과 같은 덕이다. 차의 성분과 효능은 명의의 마음과 비유하였다. 세 번째 덕은 사람의 기(氣)를 맑게 하고 절의를 지킨 청빈한 학자와 같은 덕이다. 네 번째는 마음을 편하게 하여 심신을 바르게 해주는 덕이다. 다섯 번째는 사람이 신선이 되는 덕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는 품성이다. 끝으로 여섯 번째 덕은 예를 갖추는 것으로 주공과 공자의 덕을 기린다고 하였다. 이렇듯 한재는 칠완다가(七碗茶歌)와 공덕(功德)을 지어 도가의 신선사상과 그의 이상세계를 표현하였다.

 한재는 지금의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점필재 김종직의 문화로 들어간다. 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조의제문’ 사건에 연루되어 28세라는 짧은 삶을 살다 간다. 하지만 『다부』는 그의 청렴함과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드러난 글로 내 마음의 차가 되고 있다. 차를 통해 그의 이상을 드러낸 것을 보면 차는 참으로 믿을 만한 친구인 것 같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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