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 만들기 목공수업
썰매 만들기 목공수업
  • 진영란
  • 승인 2019.01.0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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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기다려지는 날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은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었다. 그 오른쪽 아래로 50미터쯤 내려가면 방 두 칸 아담한 집에, 포근한 마당이 있는 다복한 이웃집이 있었고, 아래로 300미터쯤 더 내려가면 저수지가 있었다. 그 저수지 제방 아래 동네에는 여러 집이 모여 있어서 나는 주로 제방 아랫동네를 동경하며 살았다. 학교랑도 덜 멀고, 무섭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위 아래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열 명 남짓,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참 신나게 열심히 놀았다. 지금은 겨울엔 감기 걸린다고 집 밖에 안 나가는데, 우리는 겨울에 더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참새도 잡아먹고, 고구마도 깎아먹고, 구워먹기도 하고, 꽁꽁 언 논에서는 야구며 축구, 하키도 했다.

그 중에서 으뜸은 썰매타기다. 그 때만해도 겨우내 저수지가 꽁꽁 얼어있고, 집집마다 한키도 넘는 고드름이 자랐으니, 지금 추위는 견줄 바가 아니다. 다복한 아랫집 아저씨는 몸이 좀 허약하셔서 천식으로 고생하셨는데 손재주가 좋으셔서 아이들의 썰매며 연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5촌 아저씨였는데 난 가끔 그 분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방학숙제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 세계 지도 그리기를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랫집 아저씨가 만들어주신 썰매, 동네 오빠들이 만든 썰매를 끌고 저수지에서 온종일 살았다. 가끔 물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지푸라기에 불을 피워서 젖은 몸을 말리고 다시 놀았다. 지금 같았으면 119에 신고를 하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갈 일이었겠지만, 어린 우리들은 동네 언니오빠들의 보살핌으로, 때로는 재치를 발휘하며 참 잘도 놀았다.

그 추억이 그리워서였는지, 작년에 세동천이 꽁꽁 얼었을 때, 썰매 생각이 간절했다. 그것도 만들어진 썰매 말고, 손때가 묻은 수제 썰매 말이다. 목공선생님과 인연이 닿아서 목공수업을 추가로 신청했고, 드디어 썰매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진안고원체험학습장에 도착하니, 목공 재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수님이 미리 재단을 해 놓으셔서 우리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사를 조이고 사포질을 하면 되는 생각보다 간단한 공정이었다. 아이들은 사포도 능숙하게 잘 다루고, 무거운 드릴도 잘 다루었다. 정확하게 구멍을 뚫기 위해서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위치에 구멍을 표시할 때에는 수학에서 배운 대칭을 잘 활용했다. 어찌나 잘 만들던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매직으로 자기 썰매를 꾸미기기까지 했다. 그림은 또 어찌나 잘 그리는지 엉덩이로 깔고 타기에 아까울 지경이다.

저마다 자기가 한 것이 자랑스러웠는지 엄마한테 꼭 보여주라고 했는데, 정리가 늦어졌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학교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하고, 목공을 자주 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배운 것을 가지고 자기 삶을 스스로 일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부모님께서도 집 안 일을 아이들과 함께 하시길 바란다. 이제 슬슬 밥도 좀 시키고, 설거지도 알아서 하게 하셨으면 좋겠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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