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逍毒)에 대하여(1)
소독(逍毒)에 대하여(1)
  • 최정호
  • 승인 2019.01.0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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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조그마한 개인병원을 운영하다가 큰 종합병원에서 근무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갈라파고스 섬처럼 ‘나’라는 개인은 지난 30여년간 제한적이지만 홀로 상대적으로 격리된 진화적 환경에서 <적응>과정에 있었다고 취급될 수 있어서 <나>는 어쩌면 현재 급격한 환경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몇 가지 적응장애가 발생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곳에서 의사나 환자 모두 <소독>이란 말을 잘 쓰기에 이 단어에 얽힌 의학의 풍경을 그려본다.

 오래전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주술적>세계에 살았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면 그는 제우스신에게 불경한 죄를 지었거나, 제사에 정성이 부족했다고 가정하였다. 동양에서도 그 대상만 다를 뿐 비슷하여, 귀신이 들러붙었거나, 하늘의 노여움 때문에 천벌을 받는다고 여겼다.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사위는 4체액설을 확립하였는데 이는 혈액, 점액, 황담액, 흠담액을 인체를 이루는 기본성분으로 가정하고 이 체액들의 불균형에 의해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한의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음양오행의 불균형이 질병을 초래한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학문 체계는 신이 내린 징벌이나, 악행에 대한 천벌로 상상하던 질병에 대한 체계적 과학적 관점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작지 않다.

 헝가리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에서 근무하던 제멜바이스는 질병 (산욕열)이 그 어떤 매개에 의해 발생한다는 <추론>을 논리적 가설과 검증을 통해 주장하고 <손씻기>를 통하여 획기적으로 <산욕열>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847년)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다른 의사(특히 산부인과 의사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고, 그는 빈 의과대학에서 쫓겨 났다.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는 거의 예외없이 동시대를 이끌어가는 주류 세력에 의해 단죄를 받는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왜냐하면 어떤 체계는 그 체계를 흔드는 반역을 진압하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를 마키아벨리는 “ 군대가 없는 혁명가는 처형당한다.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그 예이다.”라고 했고, 토마스 쿤은 과학 혁명은 정상과학이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통한 진보”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 바와 비슷한 맥락이다.

 어쨌든 질병이 전염된다는 현상은 경험적 현실로써 잘 알려졌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 대한 <가설>의 한계에 있었다. 고대 이래로 나쁜 공기에 의해 질병이 전파된다는 가설은 현상의 설명에 딱 들어맞아 동서양에서 공히 채택되었던 가설이다. 그러나 어떤 <나쁜 독기>가 직접적으로 맞닿아서 전염된다는 제멜바이스류의 이론은 그 매개물을 특정할 때까지 논란을 잠재울 수 없었다. 1861년 파스퇴르는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통하여 생물의 자연발생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기물 용액이라 하더라도 인과관계 즉 다른 유기물이 인과 없이 자연적으로 생명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이 실험은 이후 전개된 질병 원인균 발견의 초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소독법과 무균법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흙탕물이나 구덩이에서 구더기나 곤충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일찍이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생명의 씨앗이 자연에 존재한다고 추론한 바 있다. 이는 인과론적으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인식을 하는 우리의 인식체계와 부합하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에까지 의심없이 인정되었으나 17세기 과학 혁명의 시기에 이러한 자연발생설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스퇴르의 실험과 원인균을 추출할 때까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세균학의 아버지라는 영예는 독일의 알베르트 코흐에게 돌아가는데 그는 탄저균과 결핵균, 콜레라균을 분리하여 이러한 세균성 질환의 원인을 밝혀내 당시의 의학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균의 발견이 치료를 담보해 주지 못했고 우연하게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발견한 (1928년) 이후에도 여전히 인류는 이러한 병원균을 제어할 마땅한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잊혀진 플레밍의 우연한 발견 (Serendipity)은 20여년이 지난 후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에 의해 재발견되고(1939년) 제 2차세계대전에서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오래전에 파스퇴르는 “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며 준비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이러한 행운이 따른다는 것을 역설한 바 있다.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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