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어느 오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어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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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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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벚꽃잎이 가볍게 흩날렸다.

 장인어른은 최대한 화를 누르며 내일 나와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 복도에서 전화를 끊고 창문 밖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봄 햇살이 나른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간혹 바람이 벚꽃나무를 스칠 때마다 벚꽃잎이 살랑거리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가볍게 날아오르는 벚꽃잎은 허공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거센 비바람이 아닌 미풍에도 저렇게 가볍게 솟아오르는 벚꽃잎을 나는 눈으로 쫓고 있었다. 긴 유영을 마친 벚꽃잎이 아스팔트에 내려앉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그녀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가 맞는지 확인을 했다. 나는 누구인지 재차 물었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나야”라고 말했다.

 ‘나?’ 당연히 ‘나’이겠지. 나도 ‘나’이고, 당신도 ‘나’이며, 그들도 ‘나’이다. 우리 모두는 ‘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무엇이다.

 그녀가 대답한 ‘나’를 듣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녀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아마 ‘나야’ 다음에 ‘나’의 반응을 기다렸을 것이다. ‘나’의 반응이 없자 그녀는 실망한 투로 이름을 이야기 했다.

 그래, 너였구나…….

 그녀는 ‘너’가 맞았다. 그녀에게는 ‘나’이면서 나에게는 ‘너’였다. 아니 나에게 그녀는 자신이 ‘나’이고 싶었겠지만 나에게 그녀는 ‘너’였다. 한때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나’였다. 나와 또 다른 ‘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대답한 ‘나’는 꼭 틀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아직 나에게 그녀가 ‘나’로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여전히 ‘나’로 존재하고 싶어서 ‘나’라고 대답을 한 것일까. 하지만 나에게 그녀는 ‘너’가 되어 버렸다.

 언제라고 딱 부러지게 선을 그어 “그때부터 당신은 이제 나에게 ‘나’가 아니라 ‘너’가 되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선을 그을 수 있는 지점은 몇 군데가 있다. 예를 들면 그녀가 믿고 따르는 신과 내가 매주 찾아가는 신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 정확히 짚어본다면 그녀가 그녀 안의 신을 내 안으로 심어놓으려고 했을 때다. 나와 그녀 사이에 종교는 나에게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그뿐이었다. 다만 강요만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 안의 신이 전부였다. 자신이 믿는 신 안에서 모든 것들이 움직이고, 이루어졌다. 직장과 가족, 사람 관계까지도 신이 말씀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확고한 신념과 종교관이 작은 개울을 만들더니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버렸다. 결국 그녀는 강 건너편에서 신의 말씀으로 식을 올렸다.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한 나는 이만치 떨어져 있는 강 이쪽에서 면사포를 쓴 그녀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결혼부터 ‘나’가 ‘너’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지점일 뿐이지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엄밀히 따지면 그녀가 실망한 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내 안 어느 낡은 부분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나’가 깨어났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에게 있어 ‘나’가 아닌 ‘너’가 된 것이 아니라 ‘너’가 되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그녀가 이름을 얘기하는 순간 그녀는 나에게 ‘나’와 ‘너’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더라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상투적인 인사 몇 마디 주고받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몇 배만큼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된다. 초등학교 때 단짝으로 지내던 오랜 친구를 20년, 30년이 지나 만나게 되면 누구나 의례 주고받는 인사치례 이후에 몰려드는 어색하면서 불안한 시간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건조해진 인사말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다시 묵은 시간만큼의 침묵을 맞이하고 있을 때 그녀가 메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보낸 메일이 내가 맞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물론 내가 맞다. 나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었다. 내 결혼식 바로 전날에……. 그러나 무슨 내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머릿속을 헤집다가 그녀에게 내가 보낸 메일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이었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고, 나는 미풍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바람을 타고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내일 볼 수 있을까?”

 그녀는 달라져 있었다. 항상 내가 먼저 다가와주기를 기다렸던 그녀였는데 먼저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다니…….

 그녀와 나는 서로 기다리기만 했다. 나는 다가가지 못했고, 그녀 역시 강력하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더 긴 기다림으로 이어졌고, 그녀는 기다림 저 끝에 서 있었다. 끊임없는 기다림으로 끝날 것 같았던 서로 다른 두 시간의 종착역이 어렴풋하게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공중제비를 하듯 허공을 몇 번 휙 돌던 벚꽃잎이 땅에 닿을 때 내가 대답했다. 그녀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다. 그녀와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한가운데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저자였다. 출간을 앞둔 저자의 전화 메시지였다. 나는 시계를 봤다. 초침은 끝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며 부지런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은 세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계는 늘 같은 길만, 같은 곳만 떠돌아다닌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길만 가는 시계를 보고 있는 나는 매번 다른 곳에 서 있다. 어제는 출간을 앞둔 저자의 원고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고, 그제는 사장의 괄괄한 목소리 속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오늘은, 오늘은 저자의 메시지가 씌어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을 보면서 시간을 가늠해봤다.

 나는 저자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내 연락을 기다리는 저자의 원고를 펼쳤다. 교정지에 정돈된 원고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매일 기도와 묵상, 참선을 하면서 신이 걸었던 길을 쫓다보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수행의 방법을 제시하고, 나열하며 독자에게 수행의 길을 권유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다 맞는 이야기의 원고 교정을 보다가 시계를 쳐다봤다. 퇴근 시간이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주소록 파일을 열어 저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저자의 용건은 간단했다. 원고 몇 군데를 수정하겠다는 거였다. 이야기만 들으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의 말대로 하면, 군데군데 내용을 들어내고, 빠진 부분에 새로 원고를 집어넣고, 추가로 원고 몇 페이지를 덧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간단하게 보이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책 한 권의 출간을 마치 동전 몇 개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음료 자판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은 그리 간단하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며 살아온 인생처럼 말이다. 책 또한 한 번 출간하면 되돌릴 수 없다.

 저자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저자의 요구대로 하려면 출간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교정을 3교를 봤는데,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니 꼭 수정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출간일정을 미뤄야 한다며 정중하게 상황 설명을 했다.

 “아니,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뺀 부분에 원고 채워 넣고, 새롭게 쓴 원고를 덧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것이 말이 되요?”

 버럭 하는 저자의 앙칼진 목소리를 들으며 방금 전에 읽었던 저자 원고의 ‘명상’ 부분이 떠올랐다. 저자는 원고에서 명상만으로는 마음을 바꿀 수 없을뿐더러 깨달음 또한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빈칸에 ‘지혜’를 집어넣었다. 지혜로 마음을 다스리고, 통제해야 마음이 바뀌고, ‘내’가 변한다고 했다.

 나는 원고를 빼고, 새롭게 채워 넣는 과정에서 텍스트의 길이가 달라지면 삽입했던 그림들이 이동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텍스트가 아주 간혹, 어쩌다 한번씩 날아가는―삭제되는― 경우가 생기므로 꼼꼼하게 다시 교정을 봐야 하며, 전체 페이지 수가 변하기 때문에 다시 조판을 해야 한다는 얘기와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저자는 “아니, 책 내용을 저자가 저자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는 말을 끝으로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길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다음 입을 살짝 벌려 안에 들어찬 숨을 가늘게 내뿜었다. 이렇게 몇 번 심호흡을 하고나니 퇴근 시간이 되었다.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저자가 요구하는 것은 쉽게 얘기해서 완공된 집에서, 내부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친 상황에서 입주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재건축은 아니더라도 기둥만 남겨놓고 리모델링을 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글자 몇 개, 몇 문장만 수정하는 범위가 아니었다. 매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다시 까는 것처럼 방금 막 끝낸 수도며 전기공사 등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쁜 소식은 미리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디자이너에게는 내일 얘기하기로 하고 퇴근준비를 했다. 혹시 모를 저자의 변심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디자이너에게 변동된 사항을 얘기하는 대신 총무부장에게 가서 내일 오후 반차 휴가계를 냈다. 막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총무부장은 내가 내민 휴가계를 보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상 위에 휙 던졌다. 총무부장은 바쁘게 가방을 챙겨들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총무부장이 아무렇게나 던지고 가는 바람에 책상 밑으로 떨어진 휴가계를 주워 책상 위에 놓고 날아가지 말라고 키보드를 올려놓았다. 돌아서려고 하는데 총무부장이 쓰는 모니터 양 옆으로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쓰여 있었다. 어떤 것은 전화번호였고, 어떤 것은 계좌번호 같았고, 어떤 것은 패스워드 같았고, 또 어떤 것은…… 숫자들만 가득한 포스트잇은 총무부장만이 아는 비밀금고 암호처럼 보였다. 저자의 원고 내용이 떠올랐다. ‘깨달음은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포스트잇에 적힌 숫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총무부장은 매일 이 숫자들을 보면서 수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키보드 밑에 깔린 휴가계를 잠시 바라보다가 날짜를 고쳤다. 오후 반차에서 하루를 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두 시간이나 갇혀 있어야 했다. 버스는 퇴근시간이라 꽉 막힌 서울 시내를 엉금엉금 한 바퀴 돌고 나서 서울 근교 도시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눈을 감고 잠을 청했을 테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길어진 해가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소리 없이 연한 분홍빛으로 덧칠을 했다. 나는 퇴근길을 바쁘게 재촉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사이로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며 벚꽃잎의 맛이 궁금해졌다.

 집은 마치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거실이며 침실, 작은방까지 온통 집기들이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내는 최소한의 짐만 들고 나갔다. 속옷과 당장 입을 옷만 신혼여행 때 사용했던 트렁크에 담아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갔다.

 할 수만 있다면 집을 통째로 뒤집어 탈탈 털고 세탁기에 넣어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싶었다. 아내가 나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작은방에는 담뱃재가 마치 화산재처럼 뽀얗게 바닥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아내가 쓰던 노트북 자리만 네모반듯하게 남겨 놓고 온통 담뱃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내는 작은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머물렀다. 침대가 있는 침실에는 아내도 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내가 짐을 싸고 집에서 나간 뒤 나는 아내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은 아니다. 아직 아내의 짐이 남아 있기도 했고, 아내의 흔적을 내가 섣불리 지운다는 것이 왠지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범죄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남이 남겨놓은 흔적을 대신 지운다고 그것이 말끔히 없어질까. 그리고 아내가 나머지 짐을 가지러 왔을 때 자신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보면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칠 것이 뻔했다. 아내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었다. 남들이 알아볼 수 없는 형식으로 아내는 집안 모든 물건들을 정리했다. 아내만의 방식으로 널브러진 물건들은 매일 위치를 바꿔가며 집안을 떠돌아다녔다.

 오래 전에 끊긴 아내와의 대화처럼 아내의 흔적들을 그대로 둔 채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미어터지는 출근 버스의 먹먹함은 이제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타고, 또 타고, 차곡차곡 포개지듯 꾸역꾸역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타기 전 마지막 정류장에서 어떻게든 올라타려고 끝까지 앞문에 매달린 승객을 버스는 힘겹게 뿌리치고 톨게이트를 지났다.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점점 늘어났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줄줄이 서행하는 승용차 옆으로 버스는 보란 듯이 달렸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표지판을 지나면서 버스도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버스는 시민을 위해 조성한 숲 옆을 지나고 있었다. 운이 좋아 자리에 앉게 되면 부족한 수면을 채우느라 창밖을 볼 여유가 없지만 입석으로 갈 때면 딱히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창밖을 볼 수밖에 없다. 아직 술이 덜 깨서 코를 골며 잠든 중년 아저씨의 오르락내리락 하는 배를 마냥 볼 수도 없고,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출근준비를 하지 못한 젊은 아가씨가 화장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다면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변태짓을 일삼는 치한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꼿꼿하게 선 채로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창밖 숲에는 간혹 사람들이 나무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가쁘게 아침을 몰아쉬는 버스 안의 사람들과는 달리 숲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꽃이 피고, 잎이 나고, 무성해진 시간 사이로 미로처럼 나있는 길을 따라 사람들은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팔을 뻗어 손잡이를 잡은 채 이유도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꽃도 피지 않았고, 잎도 나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버스 안에서 앙상한 가지들은 흔들렸다.

 고속도로가 끝나고 시내로 들어온 버스는 사람들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사무실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갖는 차 시간이 좋았다. 그래봤자 다른 직원들보다 고작 20여 분 먼저 출근하는 것뿐이었다. 아침에 생기는 1~2분의 여유가 다른 시간대보다 더 길었다. 같은 60초라고 하더라도 내가 만끽하고, 느끼는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났다. 하루 중에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다. 온전히 나를 나답게 내버려둘 수 있는 시간.

 오전 근무는 간단했다. 의례적인 사장의 훈계가 담긴 짧은 멘트, 타부서의 업무협조요청, 어제 통화한 저자의 메일 확인. 저자는 보내겠다는 대체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확인 전화를 해야 하지만 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급한 것은 출판사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전화를 하면 어제 풀리지 않은 앙금을 다시 헤집어 놓을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수그러지고, 누그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당한 시기가 되었을 때 꽃망울은 터지는 법이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하루 반 휴가를 낸 나는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녀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시간을 피해 약속을 잡을걸.

 약속 장소로 가면서 그녀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했다. 아니, 어떤 말부터 꺼낼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문장들을 만들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에 붙어 있던 벚꽃잎이 흩날렸다. 새로운 문장을 만들 때마다 나는 걸음이 느려졌고, 문장을 지울 때는 흩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봤다.

 그녀였다. 그녀가 서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총총거리며 오고가는 사람들 틈에 그녀가 작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으로 다가갔지만 내 표정은 그러지 못했다. 어색하게 웃지도, 그렇다고 화석처럼 굳은 표정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다. 어정쩡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얼굴 위로 차양을 만들었다.

 “햇볕이 강하네.”

 내가 꺼낸 첫마디였다. 수없이 많은 문장들을 만들었다 지우면서 준비한 인사 대신 나는 어정쩡한 표정을 애써 변명하는 게 다였다.

 그녀와 나는 직장인들로 시끌벅적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고, 다른 테이블에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하나둘 일어서고, 식당이 한산해질 때까지 우리는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나도 진짜 천천히 먹는데, 오빠는 나보다 더 오래 먹는다.”

 그랬나. 나는 그저 그녀가 먹는 속도에 맞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보기에는 그러지 않았나보다.

 “좋은 거야.”

 그녀는 다시 웃었다.

 우리는 나도 알고 그녀도 아는, 서로 겹쳐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했다.

 “글쎄, 연락이 끊긴지 오래돼서…….”

 질문은 많았지만 대답은 몇 개로 끝났다. 대부분 서로 연락이 끊어졌거나 연락처가 있어도 연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와 나 사이의 시간은 세게 당기면 바로 끊어질 것 같은 부식된 노끈 같았다. 양쪽 어느 쪽이든 조금만 세게 당기면 바로 끊어질 것 같은, 이어져 있지만 어느 쪽도 당기고 있지 않고, 또 어느 쪽도 놓고 있지 않은 상태.

 그녀는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목회 활동을 하는 신랑을 따라 이곳저곳 개척교회를 세웠지만 신과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의 관계에서 염증을 느낀 신랑은 목회 활동을 그만 두었고, 마을공동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지방중소도시에 작은 마을을 가꾸며 살고 있다고 했다.

 “너, 봤어.”

 그녀가 한창 마을공동체라는 곳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내가 불쑥 말을 끊었다. 그녀는 놀라는 눈빛으로 말을 멈췄다. 나는 빈 물컵에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셨다. 내 얘기를 기다리는 그녀의 눈빛에 대답 대신 살짝 웃어보였다.

 예전, 내가 결혼하기 전에 살던 곳에서 그녀를 우연히 마주쳤다. 나는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문구점에서 나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으로 전해들은 그녀의 소식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를 보자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도플갱어가 아닐까 할 정도로 너무 닮아 있었다. 나는 거리를 두고 그녀 뒤를 쫓아다녔다. 그녀는 간단한 문구류 몇 개와 편지봉투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그녀가 분명 맞는데 다가가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계산대에 서 있는 그녀와 나 사이에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공기의 압력이 팽팽하게 들어차 있었다. 발을 뻗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붙박이처럼 그 자리에 묶어두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기를, 시간을 세우고 잠시 뒤돌아보기를, 간단한 손짓만으로 약속이 되기를…….

 계산을 마치고 문구점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직까지도 멈춰있었다. 문구점 문에 달린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남기고 그녀는 밖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문구점에서 계산하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시간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네가 아닌 줄 알았어.”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여전하구나.”

 

 그녀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일이 있다며 시간이 되면 대학로까지 같이 가달라고 했다. 그녀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시끌벅적한 지하도를 내려갔다 올라왔다.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곳을 벗어나자 작은 공원이 나왔다. 그녀의 걸음은 느렸고, 나는 모처럼 느린 햇살을 받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마드리안>이라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며 마드리안이 자주 마셨다는 허브차를 시켰다. 커피숍 벽에는 마드리안이 그린 그림과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마드리안의 그림은 경계가 모호했다. 사물과 배경, 배경과 배경, 사물과 사물을 구분해주는 경계를 최대한 짓이겨 표현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경계는 또 다른 구상처럼 작게 면을 이루고 있어서 전체적인 경계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림과 멀어질수록 그 경계가 서서히 드러났다. 마드리안의 그림을 살살 문지르면 상쾌한 허브 향이 날 것 같았다.

 허브차가 나오자 그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수술해…….”

 그녀 앞에 놓인 허브차에서 살며시 김이 올라왔다.

 그녀는 검사결과를 확인하고 수술 날짜를 잡으려고 서울에 올라온 것이었다. 대학로에 있는 대학병원에 예약을 했고, 차를 마시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

 “항암 치료 들어가면 머리가 빠진대.”

 그녀는 두 손으로 허브 잔을 잡았다. 고개를 들지 않고 말없이 허브 잔만 내려다 봤다.

 역사학자이자 화가였던 마드리안이 남긴 작품은 단 두 작품이었다.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숱하게 그림을 그렸지만 남겨진 작품은 두 작품뿐이다. 그녀는 역사적 사실에 집중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을 보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 새롭게 작품 두 개만 완성시키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허브 잔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카페 메뉴판 맨 뒤에 적힌 <마드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나는 그녀를 쳐다봤다.

 “다행이야. 아직 머리가 안 빠져서.”

 그녀는 마드리안이라는 허브차를 마셨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대학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처에서 접수를 하고 대기 순서를 기다렸다. 카페에서 나와 병원까지 오면서, 또 순서를 기다리기까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내가 그녀의 가방을 잡았다. 그녀가 돌아봤다. 나는 가방끈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가방을 놓았다. 나는 그녀의 가방을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그녀는 다른 환자에 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간호사는 두 번 진료실을 들어갔다 나왔고,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묻는 환자를 응대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흐릿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 다음 진료일과 주의사항을 듣는 사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간호사가 건네주는 용지를 받아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가슴에 소리 없이 기댔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참고 있는 것인지,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인지, 들썩임도 없었고, 그녀의 따뜻한 호흡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들고 있던 가방을 의자에 조심스레 내려놨다. 나에게 기댄 그녀를 느릅나무 안 듯 양 팔로 안았다.

 미세한 바람이 일었다. 병원 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 그녀와 나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봤던 숲 속 사람들이 가지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는 너무 힘을 주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조금씩 그녀와 이어진 끈을 잡아 당겼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차표를 확인했다. 버스 시간까지 약 10여 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버스 승강장으로 나갔다. 버스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승강장에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병원에서부터 잡은 그녀의 손을 나는 놓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어깨를 내밀었고, 그녀는 기꺼이 내 어깨에 기댔다.

 버스가 조심스레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주차를 마친 버스는 앞문을 열고 사람들을 태웠다. 줄 서 있던 마지막 사람까지 다 타고 나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이 무거워보였다.

 버스는 출발했다. 해질녘 어스름에 버스는 해를 등지고 동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버스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겼다. 나는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 손을 흔들지 않았다. 버스는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췄다. 파란 신호가 들어오자 버스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해를 등지고 버스가 퇴근하는 차들과 뒤엉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동쪽에 살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신혼여행 때 사용했던 트렁크를 아내가 가져갔기 때문에 최대한 큰 가방을 찾아야 했다. 아내가 떠났듯이 나도 이 집에서 벗어날 곳이 생겼다. 아내와 내가 머물렀던 말라버린 흔적들을 더 이상 움켜쥐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가끔 등산을 가려고 마련해 두었던 배낭과 그중에 가장 큰 카메라 가방을 어렵게 찾아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등산 장갑이며 깔개 등 등산용품을 배낭에서 꺼냈다. 카메라 가방에 있던 필름카메라와 렌즈 등도 꺼냈다. 잡스런 짐들을 빼내자 배낭과 카메라 가방은 제법 여유 공간이 넉넉해졌다.

 우선 속옷부터 챙겼다. 서랍에 있던 속옷을 모조리 꺼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여름 옷과 가을 옷을 구분했다. 반팔 옷을 먼저 아래에 넣고, 그 위에 긴팔 옷을 넣었다. 바지도 몇 벌 챙기고, 마지막으로 세면도구와 수건을 넣었다. 옷가지로 채워진 배낭은 불룩해졌다.

 서랍을 뒤져 통장을 찾았다. 결혼하기 전부터 부었던 정기적금 통장과 청약저축 통장, 여행 경비로 쓰려고 틈틈이 모아왔던 통장까지 꺼내 도장과 함께 카메라 가방에 넣었다. 통장을 넣어 두었던 서랍에는 이 집 전세 계약서가 있었다. 나는 계약서를 봉투에서 꺼내려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아내가 나머지 짐을 가지러 오면 찾기 쉽도록 눈에 띄는 곳에 전세 계약서가 들어 있는 봉투를 놓았다. 평생 직장을 다닌 적이 없는 아내에게 전세금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권을 꺼냈다. 아직 해외 도장이 하나도 찍혀 있지 않았다. 무심코 해외여행을 갔다가 눌러 앉게 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해 주는 여행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들은 하와이를 비롯하여 남태평양 어느 이름 없는 섬과 동남아 이곳저곳 휴양지에서 살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그들의 눈빛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원주민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하루는 소탈하게 웃고 있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 그들은 그전에 움켜쥐고 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지고 있었고, 가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려놓다보니 그간 그들이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은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버리고 있는 중이고, 더 많이 버려야 한다며 남태평양 강렬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을 들어 머리 위에 차양을 만들었다.

 그들의 맑은 웃음이 음소거 된 표정으로 머릿속을 지나갔다. 여권을 카메라 가방 맨 앞주머니에 넣으면서 당장 입국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생각해봤다.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현관 앞에 놓았다. 혹시 빠진 것이 없는지 천천히 둘러봤다. 어제 저녁까지 읽었던 시집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과 내가 아끼던 책 한 권을 집었다가 다시 그 자리에 놓았다. 어디가 되었든, 어느 시간대에 있든 그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을 가늠하지 않고, 온전히 놓인 곳에 스며들고 싶었다. 책을 읽고, 사유를 하고, 인터넷을 하다고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눈에 보이지 않아야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일주일 넘게 운행을 하지 않은 차는 시동이 걸리자 크게 한번 거친 엔진음을 냈다. 회사에 어떻게 얘기를 할지 생각했다. 총무부장에게 전화를 해서 남은 휴가를 전부 쓸까, 아니면 이참에 사장에게 퇴사를 하겠다고 정중히 말을 할까. 아니면……. 일단 그녀를 만난 다음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하고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지방 중소도시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검사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이미 다른 곳으로 전이도 되었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완치가 될 가능성도 희박했다. 항암치료를 통해 암세포를 작게 만든 다음, 수술을 하고 다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사는 항암치료와 수술을 권유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고 하더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되는 거 아니냐며 그녀에게 희박한 희망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고개만 끄덕이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시간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것이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고, 다시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시간……, 완치가 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모든 치료가 끝나고 나서 병실생활을 해야 하는 시간……. 그녀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그녀와 비슷한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1년이라는 시간을 정해주었지만 이곳에 정착하면서 10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정해진 시간을 미지의 시간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불안에 떨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만 가지기로 했다. 이제 그녀에게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다. 그녀의 하루는 가볍게 집을 나선 봄소풍에서 만나는 벚꽃잎 같은 것이다. 그녀는 내게 봄소풍을 제안했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와 약속한 터미널까지 어떻게 가면 좋을지 생각했다. 자동차 앞 유리에는 바람에 떨어진 벚꽃잎이 앉아 있었다. 어제 버스에 올라타는 그녀의 마지막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짐을 한가득 싸지도 않을 것이고, 그녀를 걱정하는 어린 아들의 눈빛을 외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는 나와의 약속도 어기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을 것이고, 수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시간에 단지 내가 있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녀와의 약속 장소로 가려고 걸었던 자동차 시동을……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툭, 껐다.

 

 사무실 복도에서 장인어른과 통화를 끝내고 은은하게 내려앉는 봄 햇살 속으로 유영하듯 날아오르는 벚꽃잎을 바라보았다. 가는 미풍에도 떠다니는 벚꽃잎을 보면서 한때 나에게 ‘나’였던 그녀를 떠올려보았다. 그녀는 힘없이 공중을 떠다니다 바람이 멈추자 땅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떨어진 벚꽃잎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장모님이었다. 장인어른이 너무 흥분해서 그런 것이니 내일 장인어른과 한 약속은 잊으라고 했다. 장모님과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 돌아오니 책상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저자였다. 바로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교정을 봤는데 더 이상 수정할 것이 없다며 나에게 끝까지 잘 좀 부탁한다고 했다.

 창밖을 내다봤다. 바람이 세게 불었는지 꽃눈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달력을 보면서 내 휴가가 며칠인지 계산했다. 내게 남은 모든 휴가 일수를 휴가계에 적었다. 총무부장은 휴가계를 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손을 들어 강렬한 남태평양 햇볕을 가리기 위해 차양을 만들었다. 연락이 끊겨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한때 ‘나’였던 내가 맑게 웃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어느 오후…….(♣)

 

▲ 황병욱 씨 당선 소감 “첫사랑”

단발머리였다. 까르르 고여 있던 유년의 첫사랑은 새까만 단발머리였다. 하염없이 눈물을 한 움큼 받아내던 어머니도 단발머리였다. 가끔 움켜쥐지 못한 미련의 속마음도 누군가 싹둑 잘라버린 단발머리였다. 아버지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즐겨 부르지 않았다. 힘없이 꺾인 내일이 작은 숨통이라도 만들라치면 어김없이 바싹 말라버린 중력이 하늘을 움켜쥐었다. 단발머리는 항상 뒷모습이었다. 다가갈 수 없는, 손을 뻗으면 한 팔 길이만큼 멀어지는 단발머리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 끊임없이 매일 싹둑 잘리는, 삶의 표정들이 짧게 매달린 단발머리… 그 단발머리가 활짝 웃으며 찾아왔다. 흔적도 없이 무너졌던 머리칼, 첫사랑을 다시 끌어안는다.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다. 나이 많은 조카를 걱정하느라 늘 노심초사하시는 큰이모 장의순 여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 만지면 녹아내릴 것 같은…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한창 소설가 심사평 “독자가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넓게 만들어주는 작품”

2018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응모작품은 총 38편으로 응모작 모두를 정독하면서 1심에서 4심을 거쳐 5심에서 당선작을 뽑아내야 할 만큼 어려웠다. 3심까지 거쳐 올라 온 작품은「변녀, 그녀」「무희」「난청」「어느 오후」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모두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결심에서 「난청」과 「어느 오후」두 점의 작품은 동반당선을 시킬 만큼 경합 점에서 깊은 고민을 했다. 3심까지 올라 온 작품들도 모두 문장어법이 갖추어진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단일주제를 나타내는 단편소설로서의 플롯(simple plot)형성이 부족했다. 이를 테면 좀 더 강조되는 주제의 지속이 약하거나 흩어지게 되는 경우이다.

최종 결심에서「어느 오후」와「난청」은 이야기하듯 거침없이 읽혀가는 사건과 문장의 특징이 탁월했다. 심사 중에 원고를 잠깐 덮어 놓는다든가 했을 때는 주제나 서사의 막힘이 있어서다. 「난청」은 하나의 주제로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상황과 시점에 어긋나지 않는 언어 선택, 대사의 자연스러움은 현실감을 자아낸다. 균형 잡힌 배열과 튼실한 내면구조(심리와 전문성)를 견인해내고 있는 점은 작가의 소설적 가능성을 전망하게 해준다. 기법에 있어 과거와 현재의 병용이나. 주제속의 과거를 말할 때 당장의 현실결과를 궁금하게 하거나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정사의 이야기에서 연마되어 있는 작가가 지닌 문장의 향기가 향긋하다. 하지만 결심에서 선택하지 못한 점은 퍽 아쉽다.

사물의 관찰과 관조의 차이는 다르다. 관찰은 그대로 보는 눈이고, 관조는 사물에서 보고 느끼는 사유이다. 그 사유는 보는 관찰에서부터 다르다. 그림을 말 할 때 잘 그려진 그림이 있고, 잘된 작품이 있다. 잘 그려진 그림은 이미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작다. 그러나 잘 된 작품은 작가의 사상과 독자의 견해가 맞붙어 긴 느낌에 따라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넓게 만들어 준다. 당선작「어느 오후」의 경우이다. 작가의 깊은 사유는 인식변용의 어법으로 심리적 내면구조를 구사하고 독자의 사유공간을 넓게 펼쳐주는데 기여하고 있다. 문학에서 잘 쓴 글과 잘 된 작품의 차이를 생명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작품전체를 하나의 면(面)으로 볼 때, 사건과 구조의 체계적 질서와 조화롭게 병렬한 도입부와 종결부(수미 쌍관적) 사이와 또 다른 공간적 배경은 면으로 나누어 채색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를 보는 듯하다.

▲김한창
201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시아거점 몽골문학레지던스 소설작가 선정
2011 몽골 울란바타르대학 연구교수(소설강의)
2004-2006 예원예술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객원교수
몽골문학상, 전북문화상, 전북문학상, 노천명문학상소설본상, 표현문학 평론상(2017)
KBS지역문화대상(96)
장편소설 『솔롱고』 『바밀리온』 『꼬막니』
소설집 『접근금지구역』 『핑갈의 동굴』 『사슴 돌』
현 한국문협, 몽골문협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몽골울란바타르대학 종신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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