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 최우선적 가치가 되어야
산업안전 최우선적 가치가 되어야
  • 윤진식
  • 승인 2018.12.23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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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24살의 젊은이가 현장에서 작업 중 사망을 하였다. 충남의 한 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소속 계약직 근로자로 채용되어 근무하던 중 입사 3개월 만에 컨베이어에 끼어서 숨진 것이다. 2016년 서울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들어오는 전철을 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청년은 당시 19세였다. 이들의 현장유품은 허기를 면하기 위해 가방에 남겨진 컵라면과 고장 난 후레쉬가 전부였다고 한다. 무엇이, 어떤 이유로, 이렇게 꽃다운 청춘들이 일터에서 죽음을 맞게 하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참사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작업장의 안전문제! 이제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서부발전을 포함한 5개 발전사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산재사건의 97%(총 346건 중 337건)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하였다고 한다. 원청회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외부 업체에 도급을 주는 ‘사내하청’형태가 우리나라 사업장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공정에 위험이 따르는 위험공정을 원청회사에서는 기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낮은 단가로 하청업체에게 도급을 주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형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고현장도 2인 1조로 현장 점검을 하였더라면 충분히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지만 하청업체로서는 근로자 2인 1조가 되면 그만큼 임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1명만으로 순찰점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참극이 발생한 것이고 보면 이 사고 역시 인재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비정상적인 ‘위험의 외주화’ 형태는 제조업에도 일상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조선업은, 중소 규모의 사내하청사가 현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 이상이다. 선박을 제작하는 기능공의 100%가 하청업체의 근로자라고 보면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각종 작업장 안전사고들의 대부분이 하청업체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이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의하면 주요 업종별 30대 기업의 지난 5년간 사망노동자 가운데 95%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고 한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청회사가 하청업체에게 낮은 도급단가를 통한 인건비 절감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안전사고와 중대 재해를 피하게 되지만, 위험은 하청업체에서 도맡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모든 위험을 떠안고 일하는 하청업체,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근로자들이 원청 대기업들 위험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청회사는 산재 발생률이 감소하였다고 오히려 엄청난 액수의 산재보험료를 경감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실재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대표를 만나본 결과 ‘최저임금이 지난 2년간 26%나 올랐지만, 도급단가는 한 푼도 오르지 않고 있다. 안전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에서 지라고 한다’고 어려운 현실을 토로한다.

  이번 사고로 연일 추모제가 개최되고 있고 노총과 시민단체들은 ‘위험의 외주화’ 가 이런 참극을 불러왔다고 주장하며, 차제에 재발방지를 위한 고강도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안전사고와 중대 재해를 예방하고 책임져야 할 사용자의 의무까지도 하청업체로 외주시키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청, 파견, 특수고용 등의 노동자들은 불안정 고용에 더해 안전과 생명 위협이라는 벼랑 끝에서 위험에 노출됐다’고 진단하였다.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률을 당장 정비하여야 한다. 일각에선 다른 건 몰라도 우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 혹은 상시 업무에 있어서만큼이라도 기간제, 비정규직,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주장이다.

 정부에서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정책의 최우선적 비중을 두지만 안전한 일자리가 되도록 보호하는 것도 신규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중요한 정책적 과제가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그 어떤 다른 사회적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터에서 젊은 청춘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이 상황에 누가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보겠는가.

 사고가 난 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호소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언제까지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하느냐, 죽지 않게만 해 달라”. 죽지 않게만 해달라는 이 피맺힌 절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018년 세계경제규모 10위의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내용이다.

 윤진식<법학박사/신세계노무법인 대표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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