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 유턴, 이제부터 직진해야
정부 경제 유턴, 이제부터 직진해야
  • 윤석
  • 승인 2018.12.19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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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서울서 온 손님을 차에 태우고 전주 관광을 시켰다. 골목 사잇길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운전솜씨와 쉴새없이 이어지는 전주 맛집묘사. 내 가이딩에 손님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에 자극받은 나는 ‘“저만 잘 따라오면 100점짜리 전주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며 농반진반 거드름을 피웠다. 저녁이 됐고, 객리단길 유명 대패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예수병원을 거쳐 다가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을 하려고 했다. 식당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좌회전이 안 되는 것이었다. 퇴근 무렵 충경로는 차량정체가 심했다. 결국 풍년제과 사거리까지 와버렸다. 유턴을 해야 하는 순간. “아직 멀었나?”, 굶주린 한 손님의 짜증섞인 목소리. 난 자연스레 좌회전했다. 잘못된 길로 왔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빙 돌아가느라 당초보다 15분도 더 걸렸다.

 #유턴은 왠지 하기 싫다. 자존심 상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동승자에게 인정하는 꼴이다. 어리바리하고, 운전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번잡스럽다. 핸들을 마구 돌려야 한다. 한 번에 못 돌면 후진을 했다가 다시 핸들을 꺾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손해를 감수하기 싫다면 과감히 유턴하는 게 용감한 것이다.

 #이 점에서 지난 17일 확정된 ‘2019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문재인 정부는 용감하다. 경제정책 방향을 분배에서 성장으로 ‘유턴’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획재정부가 정리해놓은 자료를 들여다보니 실제로 현 정부를 시종일관 지배하던 소득주도 성장론과는 맥을 달리하는 내용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경제활력을 높이겠다며 내놓은 ‘대형 SOC 예비타당성 기준 완화’, ‘수도권 공장총량제 폐지’, ‘모든 공공시설 민자사업 추진가능’ 등의 대책은 사실상 현 정부에서는 말조차 꺼내는 게 금기시돼왔던 것들이다.

 #문 정부의 결단을 환영한다. 그동안 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등 급진적 경제정책을 펼쳐 실물경제가 악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소득주도성장’ 개념을 고집있게 밀어붙일 기세였다. 정권 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고 기대하던 청년층, 자영업자는 대통령에 대해 지지를 철회했고, 기업들은 해외로 떠났으며, 외국인들은 한국시장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주식시장에서 발을 뺐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달은 정부가 ‘유턴’을 선택한 건 용감함과 동시에 합리적이다.

 #단지, 이번 발표에 성장 견인책 몇 가지가 담겼다고 ‘유턴’이란 표현을 쓰는 게 적합한지는 시간을 두고 따져볼 일이다. 실제로 이번 발표가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 구체적 실행방법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민간투자 확대, 규제 완화는 보수정권에서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난제다. 선언만으로는 완수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선언이 있어야 실행방안도 나온다. 또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라는 지적도 있다. 유턴 가능구역을 이미 지나버렸다는 것. 그러나 뒤늦은 변화라도 아집과 독선보다는 낫다.

 #운전자가 민망함을 감수하고 일단 유턴을 했다면 동승자들은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운전자도 다시 속도를 낼 기운이 난다. 일단 유턴한 운전자는 잘 못 온 거리만큼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야 한다. 그래야 배고픈 동승자들을 제시간에 식당에 데려다 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 제시된 경제성장 책들을 굳은 의지를 갖고 구체화하고 추진할 일이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 정책이 옆길로 새는 피턴(P-turn)이 되거나, 먼 길을 빙 돌아오는 디턴(D-turn)이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윤석<삼부종합건설 기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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