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맡긴 연동형 비례대표제 ‘백년하청’
정치권에 맡긴 연동형 비례대표제 ‘백년하청’
  • 김종회
  • 승인 2018.12.1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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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급이 1만원인데 5,000원만 받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가 차고 환장할 노릇이다. 즉석에서 업주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정당한 일의 대가인 5,000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업주가 이 요구에 불응한다면 고용노동부 민원감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경제적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이 대거 출범하며 경제 민주화의 횃불을 들고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1987년 민중항쟁을 통해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간선제 무기명으로 체육관에서 뽑던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는 직선제로 바꿨다. 그렇지만 이는 미완의 혁명이다. 행정수반을 뽑는 선거에서는 거대한 역사적 진전을 이뤘지만, 의회 권력, 즉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방식은 민의를 반영하는데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2016년 실시된 20대 총선을 복기해 보자. 20대 총선의 정당 득표율은 새누리당 33.50%, 더불어민주당 25.54%, 국민의당 26.74%, 정의당 7.23%였다. 이같은 민의를 의석수에 그대로 적용하면 새누리당 100석, 민주당 77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2석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 의석수는 새누리당 122석(지역구 105석+비례 17석), 더불어민주당 123석(지역구 110석+비례 13석), 국민의당 38석(지역구 25석+비례 13석), 정의당 6석(지역구 2석+비례 4석)이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각각 22석과 46석의 의석을 더 가져간 셈이다. 물론 지역구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한 것이 결정적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거대 양당은 정당득표율이 지역구 의석수와 무관한 현행 ‘병립식 선거제도’의 프리미엄을 독차지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현행 병립식 국회의원 선거제도 아래에서, 비례대표 50석을 기준으로 20대 총선을 통해 정당 득표율 33.5%를 기록한 새누리당은 16.5석(반올림 17석), 정당득표율 25.5%를 받은 더불어민주당은 12.75석(반올림 13석)을 추가로 가져갔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 챙길 것 다 챙긴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까지 덤으로 제공하는 거대 양당을 위한 낡아빠진 제도임이 증명됐다. 이러다보니 총선 민의가 의석수에 반영되지 않는 심각한 민심왜곡과 함께 정치 불신, 거대 양당의 ‘독과점 정치’가 뿌리를 내렸다. 투표가 의석수로 연결되는 산표보다 투표와 의석수가 불일치하는 죽은 표가 더 많다는 것이 현행 제도의 모순이다.

 거대 양당은 병립식 선거제도를 바꿀 의향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소수 정당의 대표와 당원들이 열흘간의 단식과 장외투쟁을 이어가자 마지못해 선거제도 개혁에 착수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소수야당과 정치개혁 전문가, 학계, 시민사회단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정당이 가져가는 총 의석수는 정당득표율로 정하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물론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 1표를 던지는‘1인 2투표’ 방식이다.

 예컨대 300명 정수를 기준으로 A정당이 10%의 정당득표율을 받았다면 전체의석의 10%인 30석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지역구에서 20석을 얻었다면 나머지 10석을 비례대표에서 받는 제도이다.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지역구 의석이 배정받은 의석보다 더 많이 나오는 ‘초과 의석’이 발생할 수 있지만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

 여하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했다. 이 제도에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보다 더 높다.

 거대 양당이 여론의 눈치 때문에 마지못해 선거제 개혁에 합의했지만 이제는 ‘디테일의 악마’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여야간, 의원간 ▲의원정수 확대 여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비례대표 확대 여부, 지역구 의석 축소 여부)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 입장이 제각각이다. 국회의원 300명의 합의는 고사하고 정개특위의 합의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제 논에 물 대기’라는 속담이 있다. 자기에게만 이롭도록 일을 하는 경우다. 때문에 국회의원간 합의를 전제로 한 선거제 개혁은 백년하청일 공산이 크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작동할 시점이다.

 김종회<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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