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용감했다
형제는 용감했다
  • 이흥래
  • 승인 2018.12.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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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혐의로 수배된 친형의 도주를 도왔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최규성 전 농어촌 공사 사장이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서글픈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가족이기는 해도 중범죄 도주범을 도와서 기소가 됐는데 도주의 우려가 없다니…. 사실 난 법률적 형편에는 그리 밝지 못한 편이지만 그런 법원의 판단에도 일리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주범을 도왔을 뿐이지 도주범은 아니니 도주의 가능성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됐을 듯싶다. 대부분의 여느 사람들 같으면 평생 한 번도 어려운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지내고, 국내 유수의 공기업 사장까지 지냈으니 그 얼굴에 어찌 도주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평생 테니스로 단련해 하룻밤 사이 멀리 달아난 형과 달리 그리 민첩한 몸매도 아니니 아마 멀리 가기도 어려울 듯싶고, 죄가 된다면 차후 재판을 통해 처벌받을 수도 있을 터이니 그런 법원의 영장기각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외한의 생각에 불구하고도 그리 유쾌하지 못한 이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다시 돌아가 최 전 사장이 가족의 일원으로 형의 도피를 도운 처지를 이해 한다고 치자. 하지만 그는 국내 최고의 법률가들을 배출한 명문대 출신의 3선 국회의원이다. 그것도 부부가 같이 국회의원을 지낸 최고의 공인(公人)가족이다. 그런 공인이 창랑의 맑은 물에 갓끈을 씻기는 고사하고 흐린 물에 발을 담갔는데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책임을 피하려 한다면 가당키나 할 것인가. 그의 형인 최 전 교육감 같은 고급범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한 액수에도 잘못했다고, 또 결백하다고 목숨을 던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교육감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지낸 이런 유명한 형제들이 그 중한 범죄에도 죄송하다는 한마디의 그늘에 숨어버리고 법원이 이를 인정해준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불공평한가. 대들보는 아직도 튼실한데 말이다.

 오랫동안 많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시엔 대단했던 그런 정치인들도, 지나고 보면 도대체 어찌 그런 사람을 뽑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최규성 전 국회의원은 어떤 정치인일까? 사소하기는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춰보면 최 전 의원 역시 잘 뽑았다는 판단의 범주에는 딱히 들어 있지 않은 듯싶다. 30여년 이상 지역언론에 근무해온 터라 꽤 많은 국회의원들을 알았지만, 전북출신 국회의원 가운데 단 한 사람 최규성 의원은 만나본 적이 없다. 지역언론에 신경 쓰느니 차라리 공천권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더 중요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터이다.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어쨌는지 모르지만, 그 흔한 자기자랑 보도자료 한번 받아 본 적도 없는 듯싶다. 옛적 어느 국회의원은 ‘의장, 밥 먹고 합시다’라는 말이라도 속기록에 남겼다지만 그러다 보니 그가 국회에서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도 나는 잘 모른다. 그랬지만, 국회에서나 지역에서 모모 인사들과 바둑을 뒀다는 얘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그럴 시간에 정치나 잘하지’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전라북도에 끼친 업적(?) 몇 가지는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듯하다. 성사될 뻔했던 김제 공항을 무산시키고 전주완주 통합을 저지시킨 그 중심에 누가 있었던가….

 그런 동생의 정치적 자산을 의지 삼아 교육감이 됐지만, 교육적 소신보다는 챙기기에 골몰했던 형. 생각지도 않은 골프장 비리가 터지는 바람에 숱한 인사관련의 본방은 아직 나오지도 못했는데… 그런 형을 위해 자신의 화려한 미래까지 포기한 용감한 형제의 화려한 영화가 언제 개봉될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이흥래<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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