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 이대로 방관할 것인가
‘위험의 외주화’ 이대로 방관할 것인가
  • 송일섭
  • 승인 2018.12.13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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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의 젊은이가 죽었다. 2인1조로 근무해야 하는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가운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에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서 스물네 살의 한 청년이 죽었다. 이 사고가 일어나자 고용노동부는 특별감사에 착수하였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책임자와 법인에 대한 입건과 과태료 부과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익숙한 절차에 불과하다. 이와 유사한 사고가 해마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을 ‘위험의 외주화’라 하는데 이 사고 또한 ‘위험의 외주화’ 탓이다.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에서는 크레인이 무너져 여섯 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올 5월에는 충남의 한 고속도로 교량 하부 점검을 하다가 노동자 넷이 그 난간에서 떨어져 숨졌다. YTN 뉴스보도에 의하면 최근 6년간 세 명 이상 숨진 비교적 큰 산업재해의 사망자 10명 가운데 9명 정도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청년이 전동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는 단순히 개인 과실로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열악한 작업환경과 관리소홀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이에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그의 죽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슬퍼했고,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만의 일이었을 뿐이다.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이런 사고를 막을 법적,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목숨을 내 놓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딱 맞다. 원청기업들은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들에게 맡기고는 상당한 재미를 본다고 한다. 1차적으로는 위험에 따른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2차적으로는 무사고 등을 기록함으로써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태안 화력발전소는 최근 3년 동안 각종 사고로 하청 노동자들이 네 명이나 숨졌는데도,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 인증’을 받고 산재보험료 20억 원 이상을 감면 받았다고 한다. 이러니 ‘위험의 외주화’는 원청 기업이 정부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속편한 일이 되고 있다. 하청업체들은 원청업체들이 원하는 비용에 맞추다보니 노동환경의 안전보다는 인건비 등을 줄이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이런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제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더 이상 옆에서 죽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을 항의하는 한 동료의 외침이 귓가에 서늘하다. 사고가 나면 분노하다가 곧 언제 그랬냐싶게 잠잠해지고 마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우리들의 불감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정규직 사원이 꼼꼼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책임을 따돌리고 상당한 수익까지 챙기는 이 파렴치를 언제까지 답습하게 할 것인가. 비용 절감한다면서 필수 인력을 감축하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맡기는 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횡포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니올시다.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에서야 노동자 대상 안전보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또한 전형적인 ‘뒷북 입법’ 아닌가.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죽은 젊음 노동자를 생각하며 쓴 필자의 졸시 <구의역 망자의 노래>는 다시 불러서는 안 될 노래다. 그러나 다시 부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플 뿐이다.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너를 밀어 넣고도

사죄도 반성도 없다

예고된 죽음이었음을

왜 나만 몰랐을까 눈물만 흐른다

참혹한 현실을 애써 감추고

나를 위로하던 햇살 같은 네 미소가

이리 큰 아픔으로 올 줄 몰랐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구나.

 

한겨레신문(2016-06-06) [왜냐면] 송일섭의 <구의역 망자의 노래>에서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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