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그 순백의 눈[雪]을 닮은 마음으로
12월, 그 순백의 눈[雪]을 닮은 마음으로
  • 정영신
  • 승인 2018.12.12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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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이다. 새하얀 눈의 계절, 백색의 계절이다. 눈은 얼음과 달리 풍요와 길상(吉祥)을 상징하며, 하늘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려고 내린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12월의 숫자 ‘12’ 역시 조화로운 완성을 이루는 신의 숫자 ‘3’과 우주질서와 신의 은총이 담긴 숫자 ‘4’의 결합이며, 만남과 화합의 숫자 ‘5’와 희망과 완결의 숫자 ‘7’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의 영역인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이다. 또한 이 숫자 12는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로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최초로 12개의 달이 모여 한 해를 구성한다는 계산법을 만들어 냈으며, 이 12는 점성술에 사용되는 수적인 기호로서 다양한 분류체계의 척도가 되었다. 그 점성술은 새로 태어난 아기의 출생 순간 태양의 위치를 규정하는 수대 기호로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해석 도식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 이 숫자 12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12명의 올림푸스 신들을 경배했고, 종교적으로도 유대민족은 12종족으로 구성된 공동체이며, 예수도 성스러운 숫자 12에 부합되는 열두 제자와 함께 신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새로운 동맹관계로 가져가기 위한 초석을 만들었다. 또한 12살이 된 유대 소년들은 ‘바르미츠바’라는 축제를 통해 율법 아들이 되고, 유대의 소녀들은 보통 12살에 처음으로 월경을 경험하면서 여인이 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전 세계적인 축제일인 성탄절이 12월이며, 그 최고의 성탄절은 흰 눈이 날리는 하얀 크리스마스, 즉 화이트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이다.

 눈의 계절 순백의 계절 신의 계절 12월이다. 산머리에 눈이 쌓인 형상으로 명명된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은 성스러운 산이라는 성산(聖山)의 관념으로, 그 순백의 흰 눈은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신화우주론적인 거룩함과 신성함을 상징한다. 또한 이 눈은 흰빛의 밝음과 부드러운 촉각적인 이미지 때문에 남원에서는 첫눈을 받아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손으로 받아 몸을 씻으면 피부가 고와진다는 속설이 있다. 또한 하늘이라는 천상의 공간에서 내려와 대지에 쌓이는 포용의 상징성 때문에 눈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비를 베풀게 해서 우리 민간에서는 눈 속을 헤치고 산마을에 내려온 노루나 산토끼, 꿩 등을 잡지 않고 잘 먹여서 돌려보냈다. 이는 산신령도 그 동물들이 눈 속에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처지를 딱하게 여겨 민가로 내려 보낸 것으로 생각해서 돌본 것이며, 만일 그처럼 한겨울 추위 속에서 시련을 겪는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헤치면 재난을 당한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굴속에서 굶고 있는 산토끼 가족에게 칡덩굴을 베어 넣어준 나무꾼이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는데도 그 적선(積善) 덕분에 무사히 살아났다는 일화가 있다.

 눈의 계절 12월, 서해안을 비롯한 곳곳에서 펄펄 흰 눈이 날린다. 이 순백의 눈은 그 티 없이 깨끗한 색상적인 이미지 때문에 순결과 결백, 의리와 부드러움, 순수와 고결함, 동심과 노년의 즐거움, 풍요와 재생, 자비와 사랑 등 긍정적인 상징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권력이나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이 맑고 곧은 마음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선비를 흰색이나 청색에 비유했는데, 특히 이 흰빛은 어떤 인위적인 공정이 가미되지 않은 것이 있는 그대로의 원색을 간직한 무색으로서, 순리대로 사는 올바른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속에서 쓰는 길조어(吉兆語)에도 흰색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흰사슴이 나타나면 상서로운 일이 생기고, 흰꿩이 나타나면 좋은 일이 생기며, 아침에 흰 말을 보면 그날 돈이 생기고, 꿈에 백발이 되면 그 해 근심이 없이 생활하게 되고, 흰옷을 입으면 남의 초대를 받게 되며, 손톱에 흰 점이 생기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또 흰 눈 쌓인 숲에서는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 눈의 무게로 인해 큰 나뭇가지가 생을 마감하고, 그 공간만큼의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어린나무들의 심장을 데워주며, 건강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푼다.

 12월, 눈이 내리고 그 하얀 눈바람 따라 무술년의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새하얀 순백의 계절 눈의 계절 12월, 그 눈을 닮은 맑은 마음으로 지금 사랑하는 이는 더 많이 사랑하고, 대지에 쌓여 소리 없이 감싸 안는 그 눈처럼, 보이는 허물들은 덮고 또 덮고, 시련을 겪는 이에게는 희망이 되고 눈빛[雪光]이 될 수 있는, 무술년의 하얀 12월을 만들어 보자.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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