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다
  • 송일섭
  • 승인 2018.12.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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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총 닷새간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사 체험을 한 후, 우리의 교육현장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하였다. 필자는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앞장서서 ‘행복한 교육’을 실천하겠다던 서울 교육감의 평가라는데 그저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현장교원들은 이런 상황을 겪고 있었다. 다행이도 열정을 가진 교원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러한 노력들은 경기도에서부터 번진 혁신학교 운동이다. 혁신교육은 학교현장을 새롭게 바꾸면서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교육현장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고, 그의 말처럼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 동안 우리 교육은 지식정보화 시대에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미래의 핵심역량과 길러야 할 인간상에 대해 고민하면서 몇 차례 교육과정도 고쳤다. 이런 거대담론을 놓고 분주하게 토론하고 준비하였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아주 소중한 것들을 간과해 버렸다. 아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면서 그들의 무한 상상을 응원하였지만, 아이들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현장교원들의 무력감을 나타낸 말이었다.

잘못에 대해서는 몇 번이라도 고치도록 지도해야 하는데, 결석을 하고 지각과 조퇴를 밥 먹듯 해도,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잠을 자도 특별히 지도할 방법이 없다.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그만이고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교육적 의도’ 는 언제든지 ‘강요’ 또는 ‘강제’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도 교원들이 교육적으로 할 일이 없다.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매뉴얼을 펼쳐놓고 그대로 따라서 할 뿐이다. 매뉴얼에 어긋나면 징계로 돌아오기 때문에 교원들은 배운 적이 없는 법 규정 파악에 정신이 없다. 학생지도에 대한 교원의 교육적 역할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 대표적인 것이 ‘학교폭력예방과대책에관한법률’이다. 이럴 정도라면 차라리 경찰에서 수사하고 처벌할 일이다.

그나마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어려서 선생님의 말씀을 비교적 잘 듣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학생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세력이 중2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이미 스마트 폰으로 무장한 이들은 무엇이든 척척 찾아내면서 자기들의 영역을 무한확대해 가면서 그들만의 자유와 권리를 마음껏 향유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조희연 교육감의 언급이다.

“수업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엎드려 잤다. 수업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사가 도저히 관리할 수 없는 지점도 있다는 걸 느꼈다. 학생 인권에는 넓은 의미에서 학습권도 포함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같다.”

그리고 그는 또 덧붙인다. 교사의 어려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으며, 교실붕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겠다고 했고, 또 그 동안 학생인권과 학교 민주주의, 학교 자율신장이라는 가치만으로는 학습공간으로서 학교가 충분히 서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서울 교육감의 이러한 인식은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책임 있는 이 나라의 관료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인식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육현장의 변화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시스템과 제도가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현장의 내면은 위축되어 있었다. 특히 교원들의 위축은 학교를 변화시킬 힘을 원천적으로 제거해 버린 것과 같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게 했다. 다수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공동체적 삶에 협력적 마인드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 아이만의 특별함을 누리고자 했다. 그런데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회의 첫 모습 아닌가. 그런데 그 사회가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한 채 방종만 우후죽순처럼 뻗어나게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상상만 해도 속이 답답해진다. 자신의 인권과 자유도 중요하지만, 책임과 의무도 강조되는 학교 현장이어야 한다. 서울 교육감이 닷새간 교사 체험을 했던 그 학교의 선생님들은 그에게 이렇게 또 한 마디 덧붙였다.

“교육감만 현장에 와선 안 된다. 교육 관료들도 현장에 와라. 특히 새로운 교육이론을 내놓는 교육학자들도 현장에 와라. 현장에 오지 않고 만든 교육이론이나 교육정책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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