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영리병원 개원… 독배인가? 성배인가?
제주 영리병원 개원… 독배인가? 성배인가?
  • 김형준
  • 승인 2018.12.05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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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의료 체계를 흔들 시험대가 될 영리병원이 결국 제주에 개원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와 원희룡 제주지사는 그동안 논란을 벌여온 국제 영리병원 도입과 관련해 이미 완공된 녹지국제병원의 개원을 외국인 진료에 한하여 허가하는 조건부 승인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영리병원은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전액 투자하여 보건복지부(박근혜 정부)의 승인을 받아 2016년 4월부터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안에 약 800억 원을 들여 지난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에 47개 병상 건물을 완공하여 개원허가를 제주도에 제출한 상태이다. 그러나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의사협회를 비롯한 보건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녹지국제병원의 개원이 결국 우리나라 의료의 핵심 근간인 국민건강보험체계와 비영리 원칙을 무너뜨려 공공의료체계의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줄기차게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찬반의견이 충돌하자 제주도는 이 문제를 논의할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각계. 각층의 의견과 제주시민들의 토론을 통해 권고안을 도출하기로 합의하고, 원 지사 역시도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시민의 높은 반대여론(약 60%)에 따라 영리병원 개원 불허 의견으로 권고안을 만들어 도지사에게 전달하였으나, 권고안을 존중하기로 한 애초 약속과 달리 제주도는 2개월의 고심 끝에 12월 5일 개원을 허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개원을 불허할 경우 외국자본 유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하락과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 등 후폭풍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 것이 이유로 전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기관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내 의료법은 의료인 개인이나 비영리 의료법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자본의 투자를 받아 주식회사나 유한회사 같은 기업형 병원을 개설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당연히 투자금에 대한 수익분배나 회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제주도의 계획대로 개원이 허가된다면 이번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바로 기업형 영리병원의 국내 1호 사례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대원칙은 ‘비영리추구’,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 요약될 수 있다. 국내 의료기관은 모두 국민건강보험에 당연 지정되어 일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고 건강보험에서 허용한 진료와 진료수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록 민간의료기관이라 하여도 사실상 정부의 통제 하에 놓여 있다. 또한, 의료기관은 인건비를 제외한 어떠한 이익을 남겨서도 안 되고 이익을 회수/분배해서도 안 되는 비영리기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의료의 평등성과 공공성, 그리고 의료비 상승을 통제하는 측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원가 60%에도 못 미치는 지나치게 통제되는 낮은 수가로 인해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와 기형적으로 성장하는 비급여 항목(상급병실료, 고가 검사 등)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료의 현 문제점을 만들어 왔다. 이점은 의료인이나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불만을 만들어 왔고 일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의료보험과 영리병원의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민간의료보험과 원격의료와 같은 IT 통신서비스에 기반을 둔 의료서비스를 새로운 잠재력 높은 시장으로 바라보는 대기업의 요구와 맞물러 지난 정권 등에서 끊임없이 도입이 시도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아픈 사람을 돈벌이 대상으로 하여 의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대규모 자본유치가 가능한 대형병원과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으로, 결국 의료의 양극화를 일으켜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난에 부딪혀 쉽게 진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첨예한 대립구도에서 외국인 한정이라는 조건부이긴 하나 제주도의 국민건강보험의 통제에서 벗어난 영리병원의 도입은 가장 민감한 의료현안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침체기에 빠지고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한다. 이로 인해 경직된 투자 환경과 규제를 철폐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첨단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의료도 과거의 공공성과 보건적 측면 외에도 산업으로서의 가치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의료분야의 규제를 철폐하고 투자를 유치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의견은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길이 막힌다고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없애자는 주장처럼 ‘공공성’과 ‘보편성’, 그리고 ‘휴머니티’이라는 의료의 본질까지 훼손하면서 진행되는 의료의 영리화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걱정은 지나친 기우일까? 분열을 부추기는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한 논의와 합의를 통한 사회 통합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김형준<의료법인 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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