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유쾌한 영미씨
베트남의 유쾌한 영미씨
  • 장상록
  • 승인 2018.12.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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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한국 동해를 일본해로 부르는 것에 분노하면서 베트남 동해에 대해선 아무렇지 않게 남중국해라 부르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화주의는 우리 내면에 잠재한 유사 오리엔탈리즘이다. 그것은 필리핀에서 만난 화교가 내 면전에서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고 한 오만방자함의 보편화된 버전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조국독립을 위해 피 흘린 숭고함을 아는 한국인이 티벳과 신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과 인권탄압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는 모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처음 하노이를 방문 했던 그날처럼 이번 베트남 여행도 도착하던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비와 함께 해야 했다.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세계 최고수준인 그 나라에서 남성들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 내게 베트남 남성의 하루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줬다.

“아침엔 도란도란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나라를 걱정하고, 점심이 되면 따가운 햇볕을 피해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이 되면 맥주 집에 모여 축구를 보면서 또 나라 걱정을 한다.”

  잘못하면 베트남 남성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여기엔 베트남 역사에서 남성의 역할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자긍심이 유머와 페이소스로 녹아있다.

  징기스칸의 몽골군, 디엔비엔푸에서의 프랑스군, 무패를 자랑하던 세계최강 미군은 물론 등소평의 중국군까지 베트남을 침공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베트남은 약소국이 아닌 승전국이다.

  대외관계에서의 당당함과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다시 찾은 베트남. 다낭의 해변은 아름다웠고 전북 도청을 능가하는 다낭 시청의 웅장함과 세련됨에선 베트남의 웅비를 예감하게 된다. 호이안의 고풍스러운 시가지와 그곳 사람들의 넘치는 활력 속엔 베트남의 유서 깊은 역사와 역동적인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여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자리한 곳이자 베트남 현대사에서 최고 격전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궁이 위치한 성이었다. 아직도 정비가 완벽하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규모나 아름다움이 상당했다. 하지만 정말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성을 안내해준 가이드 때문이다. 자신을 ‘베트남의 영미’라고 소개한 스물넷의 아가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컬링 대표팀이 보여준 선전에 대한 칭찬부터 시작했다.

  관람지에서 설명을 할 때는 팔도 사투리는 물론 종묘와 의자왕에 대한 얘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거기서 더나가 그녀는 최근 낮은 출생률이 대한민국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더했다. 그런데 정말 귀 기울이게 만든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 베트남 사람은 프랑스인이나 한국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프랑스가 우리에게 커피와 고무를 심도록 강요해 고통을 줬지만 지금은 커피와 고무가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은 현재 베트남 최대 투자국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나라 모두 우리에게 사과했고 현재 소중한 이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아마도 들국화 노래를 인용한 듯). 하지만 우리는 중국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천 년 넘게 우리 민족을 핍박한 그들은 자신들의 죄과에 대해 지금도 반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죠. 그거 말도 안되는 게 아니라 미친 거죠.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일본과 같습니다. 중국은 동해(베트남 동해)에 대해서 자신들 것이라는 끝없는 탐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보검을 좋아해 그를 닮은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그녀에게 물었다.

 “한국말은 어디서 배웠고 한국엔 다녀왔어요?” 그녀는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며 대학과 한국 드라마를 통해 배운 것이 전부라고 얘기해 날 놀라게 했다.

  베트남의 영미씨는 유쾌하고 명석할 뿐 아니라 훌륭한 민간 외교관이었다. 한국에 너무도 가보고 싶다는 그녀에게 언젠가 기회가 오길 바란다.

  사족 하나, 베트남에서 최고의 과일 선물은 한국산 딸기라고 한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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