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와 세금주도성장
조삼모사와 세금주도성장
  • 김동수
  • 승인 2018.12.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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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원숭이를 좋아하여 키웠는데, 키우다 보니 수가 차츰 늘어 먹이가 모자라게 되었다. 그러자 저공이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나누어 주겠다(朝三暮四)”고 했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거세게 반발했다. 저공이 놀라 궁리 끝에 원숭이들에게 다시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거나, 바꿔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어도 일곱 개라는 양(量)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원숭이들로서는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즐거워했던 것이다.

 지난 11월 22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올해 들어 하위 20% 소득계층의 소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6%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각종 명목의 수당과 연금은 늘었지만(20% 정도)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먹이는 그대로인데 파이(pie)를 키울 생각은 안 하고 이쪽을 떼어 저쪽에 붙여줄 생각만 하다 보니 빼앗긴 자는 빼앗겨 불만이고, 받은 자는 더 받지 못해 안달이다. 인건비를 올리고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올리다 보니 사업주들이 위기의식을 느껴 직원을 감소하고 사업 규모를 축소해 결과적으로 가계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저소득층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려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고 내 놓은 소위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이 경기호전이 없는 상태에서 인건비만 올리다 보니 자영업자들이 고용 인원을 줄이고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여 저소득층들의 삶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다 보니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소득이 줄어 못 살고, 사업주들은 사업주들대로,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세금만 늘어나니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저소득층에게 현금을 나누어 주다 파산한 그리스나 남미의 베네수엘라 짝이 될 거라고 불안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분배 정의만 내세웠지, 성장이 없는 ‘소극주도 성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땜질 처방이라고, 그러기에 결코 소득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다고.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기술향상을 위한 연구·개발(R&D)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일자리는 늘리지 않고 세금에만 의존하고 있으니 ‘소득주도 성장’이 ‘세금주도 성장’으로 변질하여 조세부담만 늘어가는 현실이다.

 복지국가는 성장과 더불어 분배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들이다. 성장과 분배가 병행된 경우엔 설사 성장이 조금 느려져도 안정된 사회가 지속할 수 있지만, 분배에만 의존하다 보면 경제 성장이 느려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불안정이 발생하게 된다고. 그럼에도, 작금 우리 정부는 세금으로 취약 계층을 지원하며 분배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소득주도 성장’은 결국 조삼모사처럼 임기응변의 세금주도 성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문제다.

 남북문제도 중요하지만 삶의 근간인 경제가 안정되지 못하면 그 어떤 정책도 사상누각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성장이 아닌 분배, 좀 더 가진 자의 것을 가져다 적게 가진 자에게 나누어 주는 분배 우선주의 정책,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고 실업수당으로 땜질하려는 임기응변식 정책은 결과적으로는 둘 사이의 관계만 나빠지는 저급한 미봉책이다.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국민소득이 늘어날 것이다. 뺏긴 자는 가진 것을 빼앗겨 분노하고, 얻은 자는 더 얻지 못해 가진 자를 미워하는 악순환의 연속, 이것이 요즘 우리가 느끼는 소득주도성장의 실체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시인/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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