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의 대화
여행 속의 대화
  • 박인선
  • 승인 2018.12.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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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라 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여행은 일상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낯선 것과의 만남이다. 특히 아날로그 시절의 해외 여행은 ‘단절’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였다. 이런 개념이 바뀐 것은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비롯되었다. 해외여행 시 로밍서비스로부터 전화요금 걱정도 없어졌다. 음성통화는 물론 고화질 동영상을 주고받기 위해 버벅거림도 많이 해소되었다.

 며칠 전 희희낙락 하면서 미술 전시회도 같이 다니고 때로는 식사도 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절친 선배가 유학 중인 아들의 졸업식을 위해 미국 여행을 떠났다. 친밀한 성품 때문에 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빈자리로 인해 카카오톡방에 정적이 흐르나 싶었는데 카카오스토리를 훑어보다가 깜짝 놀랄 장면들을 발견했다.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여행의 모습들을 카카오스토리에 소식을 올려놓았다. 카카오톡방의 소식이 카카오스토리로 옮겨 간 셈이다. 가족들을 만나고 음식들과 지나온 일정들을 소상하게 올려놓으니 한국과 미국의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느낌이다. 한 때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통신과 교통 발달로 인한 거리감이 좁혀졌기 때문이다. 우주 개발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지구족’, ‘화성족’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일반화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작가에게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미술관이다. 시카고에 도착한 선배는 카카오스토리에 미국의 3대 미술관에 속하는 시카고미술관을 올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인상주의 프랑스화가 조루주-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의 작품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을 시작으로 모네, 피사로, 폴록, 앤디워홀 등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해 놓았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풍경이 더해지고 작품은 실감나게 비쳐진다. 댓글이 달리니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다.

 명화 작품들은 대부분 교과서를 통해 읽혀졌다. 우리와 다른 모습, 익숙하지 않은 풍경, 손바닥 보다도 작은 그림을 통해 명화는 왜곡되어 있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크기가 가로 3m, 세로 2m로 대형 작품이지만 교과서의 명화는 어느 책의 표지화(?) 정도인가 싶을 만큼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 작품이 시카고 미술관으로 매입된 스토리는 흥미롭다. 쇠라는 32세 나이로 요절한다. 최초 매입자가 800프랑에 팔리게 되고 두 번째 구매자 바틀릿이라는 재력가에게 2만달러에 넘겨진다. 이재에 밝은 바틀릿은 시카고미술관장에게 40만달러에 매입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이런 작품이 재평가를 통해 100만달러가 넘는 금액에 구매되어 시카고미술관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고 하니 예술품의 가치가 “그 때, 그 때 달라요”라는 어느 개그 소재가 떠올려지면서 현재의 가치가 궁금해진다.

 이후 선배의 카카오스토리에는 뉴욕의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과 모마미술관에서 맞닥뜨렸다. 뉴요커 아닌 뉴요커가 된 모습이다. 뉴욕의 날씨는 차가운 바람과 비로 을씨년스러운데 우산을 들고 있어도 즐거운 표정이다. 모마미술관은 근·현대미술을 망라한 미국의 최고의 미술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비롯한 고흐, 마티스, 샤갈 등의 대표작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이들의 작품들이 선배의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친구들과 공유하게 된다.

 고해상도의 이미지로 올라온 작품을 보면서 한 세기를 주름 잡던 작가들과 작품 앞에 선 한국 작가와의 대화에는 카카오스토리의 공간처럼 경계는 없을 것만 같다. 이처럼 여행은 잠시 잊고 있던 내 안의 자아를 끄집어내는 시간이다. <알리바바>의 설립자 마윈은 ‘미국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영어학원의 선생님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그가 여행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이킨 사건에 대한 역설이다. 카카오세상에서 만난 선배와의 일상을 벗어난 여행속의 대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다그침으로 다가온다.

 /글=박인선(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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