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쑤의 한인사회] 난징에 흠뻑 매료된 지성인 씨
[장쑤의 한인사회] 난징에 흠뻑 매료된 지성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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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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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에 흠뻑 매료된 지성인 씨

 

 2018년 9월 3일은 난징의 평범한 여름날이다. 하지만 한국 유학생 지성인 씨에게는 매우 특별한 날로 습하고 무더운 날씨도 반갑게 여겨진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를 2년 만에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난징사범대학교 국제문화교육대학의 학부생이 아니라 경영대 대학원생 신분이다.

 “이 땅을 다시 밟으니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합니다. 2년 동안의 변화가 커서 낯설기도 하지만 역시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어서 익숙합니다. 오랜만에 오니 정말 반갑습니다!”

 지성인 씨는 32세로 전라남도 출신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를 동경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자를 배웠다고 말했다. 『삼국지』를 즐겨 읽어 손에서 놓지 않다시피 했으며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곳을 가보는 게 가장 큰 꿈이 되었다.

 지성인 씨가 난징에 오게 된 것은 누님과 매형 덕분이다. 누님과 매형이 난징의 한 타이어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장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기 때문이다. 2012년에 그는 드디어 소원을 성취하였는바 난징사범대에 와서 중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2016년에 학부를 졸업한 후 상하이에서 1년 동안 근무하다가 귀국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모교를 찾았으며 기업경영을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난징을 다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난징은 저에게 행운의 땅입니다. 아직도 인연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에서는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난징에서는 교수님과 주변 친구들 덕분에 ‘장쑤성정부 재스민장학금’과 ‘장쑤유학 우수인재 유치프로젝트’ 장학금을 두 번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2015년 6월, 그는 장쑤성정부 신문판공실이 주최한 ‘장쑤와 더불어 즐기기’ 외국인 중국어 말하기대회(난징지역 예선)에서 2등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저는 문화 융합에서 진로를 찾았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합니다.” 그는 요즘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중국에 오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는 중국의 샤오미(小米) 보조배터리가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있다고 하면서 정부가 나서서 젊은이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때문에 모두 중국 정부에 호감이 많다고 하였다.

 그는 전라남도는 한국의 서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서쪽으로 중국과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장쑤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소개하였다. 전라남도에는 해발 1,915미터의 지리산과 온전하게 보존된 원시림이 있는가 하면 난징에는 쯔진산과 녹음이 우거지는 플라타너스길이 있다고 하였다. 가을에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 흰 눈이 내리는 장쑤가 더욱 그리워진다고 하였다.

 난징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그는 신에너지 자동차가 더욱 많아졌다고 하면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버스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장쑤 문화 중에서 난징의 백국(白局)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백국은 난징의 토종 예술로 현지 방언을 구사한다. 서민들의 생활을 강남 민요로 부르는 예술이다. “완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예술가들이 노래에 담은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11월 늦가을에 지성인 씨는 항상 수령이 100년 넘는 두 그루 은행나무를 구경하기 위해 난징사범대 수이위안(隨園)캠퍼스를 찾는다. 건물 높이의 은행나무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은 100년 역사의 산 증인이다. “수령이 100년 넘지만 가지와 잎은 무성하기만 합니다. 난징 도시와 마찬가지로 육조고도(六朝古都)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아직도 생기가 넘쳐흐릅니다.”

  웨이신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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